"이란 이슬람 정권, 반드시 무너진다" 노벨평화상 받은 여성 인권운동가의 외침

입력
2024.02.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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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벨평화상 에바디 서면 인터뷰
이란 첫 여성 판사 출신... 히잡 시위 지원
'무슬림이자 페미니스트'... 차별에 저항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왕을 내쫓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1979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란 이슬람 혁명'이다. 서구의 민주 공화국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듯 '이란 이슬람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였던 시린 에바디(77)도 혁명에 동참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쓰디쓴 배신이었다. 정권을 장악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에바디의 법복을 벗겼다.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이게 히잡으로 꽁꽁 싸매도록 강제했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남성을 유혹할 수 있다는 명목에서였다. 이란의 여성 인권 시계는 7세기로 되돌려졌다. 에바디는 침묵할 수 없었다. 정권에 맞서 싸웠다. 양심을 따른 덕분에 그는 2003년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그후 20년. 2023년 노벨평화상은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2)에게 돌아갔다. 무서운 데자뷔였다. 2022년 9월 이란의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간 뒤 의문사했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반정부 여론이 들고 일어섰다. 이란 전역에서 "여성, 생명, 자유"가 울려 퍼졌다.

에바디의 혁명은 다시 시작됐다. 정권의 탄압을 피해 2009년부터 영국에 머물고 있던 그는 이란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를 대표해 반정부 시위를 후방 지원해 왔다. 이번에는 '성차별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세속주의 정부'를 세우는 게 목표다.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기차라고 생각해 보세요. 종착역이 '정권 전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기차가 언제 도착할지 모를 뿐입니다." 혁명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다음은 에바디와의 이메일 인터뷰 일문일답.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6일과 지난달 12일 두 차례에 걸쳐 이란어로 이뤄졌다.


-2022년 반정부 시위의 불씨를 댕긴 건 다름 아닌 '히잡'이다.

"히잡은 이란 내 모든 억압의 상징이다. 반정부 시위는 히잡을 넘어섰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을 옭아매 온 모든 차별과, 차별을 조장하는 이슬람법령에 저항하고 있다. 이번 시위가 과거의 시위보다 광범위한 방향과 목적을 갖는 이유다. 히잡은 이슬람 신정 정권의 상징이고, 이 때문에 정권은 이를 포기할 수 없다."

'히잡 쓰지 않을 자유'가 야기한 시위는 곧장 정권 전복을 향해 나아갔다. 신을 대리하는 성직자가 종신 집권하는 신정국가 이란에서 히잡은 이슬람 이데올로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란 이슬람 정권이 복종을 강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본래 히잡 착용은 이슬람의 종교적 의무이거나 전통이 아니라고 에바디는 설명했다. 에바디는 무슬림이면서 동시에 히잡을 거부한 페미니스트다. 그는 줄곧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아닌 이란 이슬람 정권의 가부장성을 겨냥해 왔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성차별 정권"이라고 비판해 왔는데.

"전통주의자 무슬림 여성들조차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이슬람에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 정권이 성차별적 적용을 하는 게 문제다. 히잡만 놓고 봐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란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으면 처벌받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등에서는 히잡을 안 썼다고 처벌하지 않는다."

실제로 히잡 착용 여부는 같은 이슬람권 안에서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졌다. 이란에서도 히잡은 부침을 겪었다.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한 팔레비 왕조 아래에서는 히잡 착용이 법으로 금지된 적도 있다. 1960년대 후반 테헤란대 법대를 다녔던 에바디는 당시 단과대에 히잡을 쓴 여학생은 셋뿐이었는데 이들이 오히려 튀어 보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1970년대 테헤란은 '중동의 파리'로 통했다. 이란 여성들은 패션 잡지 '보그'를 읽고, 다리를 훤히 내놓은 채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평등과 자유를 요구하는 대중의 저항에 정권은 어떻게 대응했나.

"말했듯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본질이 성별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차별 정책)' 정권이다. 평등과 민주주의에 입각해 이슬람을 해석하는 것으로 성차별은 근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권은 절대 스스로 민주주의 수준을 개선하지 않을 것이다."

아미니의 죽음이 촉발한 히잡 시위에 이란 정권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태세로 맞섰다. 시위를 유혈 진압한 후 더 엄격해진 '히잡과 순결 칙령'을 선포했다. 2022년 12월에는 시위 참가자에 대한 첫 사형을 집행했다. 공포 정치로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다.

-오는 3월 1일 이란 총선을 앞두고 정권이 민심 달래기에 나설 가능성은 없나.

"이란에서 선거는 우스운 보여주기식이다. 원하는 후보에 투표할 수 없다. 최고지도자의 대리인인 헌법수호위원회의 사전 자격 심사를 거쳐 출마가 허락된 이들에게만 투표할 수 있다."

정권은 오히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국제사회 관심이 쏠린 틈을 타 반체제 인사 제거에 열 올리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이란 인권(IHR)'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이후 이란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127명이 처형됐다.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 등 '사법 살인'이라고 IHR은 비판했다. 총선을 앞둔 이란의 정치 공간은 더욱 협소해졌다.

에바디는 국제사회의 행동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동료 노벨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 나디아 무라드 등 100여 명과 함께 이란의 성차별을 '젠더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하고 반인도적 범죄로 제재할 것을 유엔에 촉구했다.



-이른바 '히잡 시위'는 무엇을 남겼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어떠한 제한 없이 우리들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공화국은 대중의 바람을 수용하거나 어떤 변화도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고집스럽게 버틸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럼에도 대중의 연대는 훨씬 강해졌다. 역설적으로 정권에 대한 공포도 줄었다. 처벌받을 것을 알면서도 다수의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있다."

여성들은 더 용감해지고,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일상에서 히잡을 벗는 불복종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느냐'로 시위의 성패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저항의 불씨가 계속 수면 아래 타오르고 있는 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슬람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란인들은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저항을 계속할 것을 결심했다. 지금도 지하 활동을 통해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이란의 현 상황은 언제 터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활화산과 같다. 이란인 공통의 목표는 '정권 교체'다. 민주주의 세속주의 정부가 이상적인데, 체제는 왕정이나 공화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정권 전복 이후 국민 투표를 실시해 결정할 문제다. 오랜 논의 끝에 이 같은 합의에 이르렀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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