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 소비에트 관청사 연상" 건축가의 쓴소리

입력
2024.02.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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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현, 도시 논객

건축가는 어떻게 도시를 만나고 읽고 기록할까. 서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의 책 '도시논객'은 도시를 바라보는 동시대 건축가의 시선을 가감 없이 기록한 책이다. 10년 전 도시 비평서 '빨간 도시'를 낸 저자는 건축가이자 건축 비평가다. '우리 사회를 읽는 건축가의 시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책에서 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도시 풍경 속에서 부조리와 불협화음을 포착하고 그 전후 맥락을 신랄하게 짚어내는 논객의 면모를 보여준다.

책은 도시의 변화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낸다. 독특한 점은 변화무쌍한 도시의 행간을 읽어내면서 한편으론 건축가답게 명료한 건축관을 밝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비판의 칼날을 가차 없이 들이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무심한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규정한다. 대통령의 집무실이라면 외관부터 대한민국의 꿈과 야심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국방부 청사로 쓰였던 건물은 그 정체성에 걸맞게 위계와 상명하복 원리를 담고 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지난 세기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소비에트 블록 관청사라고 칭하면 딱 들어맞는 건물"에 불과하다.

지난해 '잼버리 오명'을 남긴 전북 새만금은 또 어떠한가. 저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책들이 대안 없이 현수막에 걸리던 새만금의 풍경을 떠올린다. 허황된 꿈은 5년마다 현수막에 실려 나부꼈다. 진퇴양난과 대안 부재 속에서 잼버리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이벤트로 등장한다. 새만금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은 일회성 이벤트는 결국 "험지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야영장으로도 쓸 수 없는 흉지"라는 이미지만 남겼다. 저자는 단언한다. "괴담과 성토, 의혹과 아우성을 내지르는 현수막이야말로 지금 도시를 규정하는 가장 익숙한 풍경이다."

정치, 역사, 권력, 주거 등 10개의 키워드에서 촉발된 수십 편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불합리와 부조리가 뒤엉킨 대한민국 도시의 풍경이 저절로 그려진다. 이내 궁금해진다. 저자는 도대체 왜 이 살풍경한 도시의 치부를 들추고 불편한 행간을 읽어왔을까. "존재 가치를 규명하는 첫 문장을 만들려면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토대로 짐작건대 그 나름의 역할과 의미를 찾기 위함이었을지 모르겠다. 난제일수록 더 많은 성찰과 분석이 필요할 테니. 책이 도시 비평서이기 전에 다음 작업의 첫 문장을 만들려는 건축가의 분투기로 읽히는 이유다.


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