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판사가 부러운 한국 판사

입력
2024.01.30 19:00
25면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우연찮은 기회에 단행본을 두 권 내고, 자기 주제도 모르고 유명한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내가 쓴 책이고 내 얼굴임에도 아주 낯설었다. 책과 방송을 본 몇몇 사람들이 나를 '따뜻한 판사'라고 불렀다. 나는 따뜻한가? 영화를 보다 울 때가 있긴 해도 그리 따뜻한 인간은 아닌데. 법정에서는 무뚝뚝하고 무섭게 재판을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데. 급한 성격과 법의 준엄한 명령에 눌려서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불편한 재판을 감내했을 변호인과 당사자에게는 늘 미안한 심정인데.

이런 내가 따뜻하다고 오해를 받게 된 결정적 사건이 있다. 2019년 셋이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자살방조미수로 기소된 청년에게, 책과 차비 20만 원을 준 사건이다. 피고인에게 돈을 줘 본 적이 없어 '판사가 이래도 되나'라고 주저했지만, 청년의 자살 의지가 너무 강해 앞뒤 재지 않고 그냥 줘버렸다. 세상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그에게, 어떻게든 타인의 관심이 있음을 각인시키고, 생을 향한 작은 불씨라도 지피기 위해 강력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한파가 극심했던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나는 또다시 구속된 노숙인을 석방하며 책과 10만 원을 건넸다. 이미 전력이 있던 처지라 조용히 선고했으나, 같은 날 법정에 있던 어떤 이가 신문사에 제보했다고 한다. 때가 때인지라 미담 기사가 쏟아졌고, 민망함에 사람들 눈을 피해 다녔다. 걱정돼 흘낏 본 댓글 중에 '이런 판사는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라는 글이 있었다. 그래, 나는 한국 판산데, 별로 살갑지도 않은 내가 대체 왜 자꾸 오버하는 걸까.

소년범에게 처벌을 내림과 동시에 후견적으로 보살피기도 하는 소년부 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소년은 물론 법원에 오는 사람 중 상당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계적인 처벌을 반복해 봐야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이것이 '치료 사법'의 현실인식이다. 소년부 판사로 근무하며 영미의 치료사법 이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치료사법을 현실로 구현한 것이 '문제해결법원'이다. 미국은 약물남용으로 인한 재범률 급증, 과밀수용으로 인한 교정시설의 한계 봉착 등 여러 사회문제로, 1990년대부터 약물법원, 정신건강법원, 가정폭력법원, 재향군인법원 등 다양한 문제해결법원을 운용하고 있다. 약물법원을 예로 전통사법과 치료사법을 비교해보자. 일반 형사법원이 마약사범의 구금 여부나 기간을 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약물법원은 판사와 검사, 의사 등이 한 팀을 이뤄 피고인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노력한다. 피고인은 정기적으로 판사에게 치료 여부를 보고한다. 잘 따라오지 못하면 형사법원으로 보내고, 잘 따르면 처벌을 면하게 해준다. 약물법원 판사는 병원을 방문하고, 피고인을 불러 약은 잘 먹는지 물어보고,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가족과 친구를 법정에 불러 축하해 주기도 한다.

우리 사회도 이제 형벌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범죄(정신질환, 마약, 생계범 등)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루빨리 치료사법 이념을 도입해야 한다. 문제해결법원이 생기면, 그 유명한 피오렐로 라과디아나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를 능가하는 따뜻한 판사들이 대한민국에도 쏟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가 사실은 미국 판사를 흉내 낸 얼치기였음이 들통날 것이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오해 역시 풀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형벌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마음껏 휘두르는 미국 판사를 부러워하며, 또 누군가에게 줄 책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주영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