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정세가 급박해지면서 잠잠하던 국제유가가 다시 출렁이고 있다. 미국의 원유 증산도 한계에 임박해 물가 상승 불안감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29일 아시아시장에서 3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오전 한때 1.5% 치솟으며 배럴당 84달러를 웃돌았다.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 역시 장중 79달러대까지 올랐다가 78달러대로 내려왔다. 이날까지 4거래일 연속 상승으로, 지난 한 주간 브렌트유와 WTI 선물 상승폭은 각각 6.4%, 6.5%에 달한다.
유가를 반등시킨 주원인은 지정학적 리스크다. 우크라이나의 연이은 러시아 석유시설 공격과 러시아 군용 수송기 격추, 이란 상업시설 폭발, 후티 반군의 유조선 공격 등 주요 원유 생산국을 둘러싼 갈등이 유가에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엔 친(親)이란 민병대의 요르단 북부 무인기 공격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처음 세 명의 미군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어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보복 선언으로 중동 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 상태다.
지난해 산유국협의체 오펙플러스(OPEC+)의 원유 감산을 상쇄시키며 유가 안정을 이끈 미국 셰일오일 증산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유 생산 채산성이 좋은 시추 후 미완공 유정(DUC)이 줄어든 탓이다. 이 경우 공급 충격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백영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DUC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미국의 추가적인 원유 생산이 한계에 임박했다”며 “1분기 국제유가 급등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우려스러운 건 국내 소비자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올 상반기 국제유가(브렌트유)를 배럴당 86달러, 연간 85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고려한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연간 2.6%)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유가가 한은 전망 범위를 넘어서 높은 수준을 장기간 유지한다면 물가 상방 압력은 높아지고, 기준금리 인하 역시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은 역시 국제유가 추이를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황희진 경제통계국 통계조사팀장은 “물가가 안정되리라는 기대가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국제유가 둔화 흐름이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