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르면 오늘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태원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유가족들이 어제 참사가 발생한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부터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며 오체투지 행진까지 벌였지만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행사한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입장 변화 없이는 재의결이 불가능한 만큼 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맞물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별도의 지원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참사 관련 대법원 확정 판결 이전에라도 신속한 보상과 추모공간 마련 등을 추진하려는 취지일 테지만,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소중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은 비극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 책임을 분명히 가려달라는 것이다. 159명이 희생된 참사가 일어난 지 15개월이 지났건만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윗선 문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검찰의 기소 지연으로 지난 19일에서야 떠밀리듯 재판에 넘겨졌다.
이태원 참사는 많은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 있다. 사회적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윤 대통령이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숙고해야 한다. 유가족 지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이태원 참사의 본질이 덮일 수는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취임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9번째다. 1987년 민주화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미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쟁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할 거부권 행사를 남발하는 것은 민심을 다독여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대통령의 자세와도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