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이 굿즈들은 평범한 '스타벅스 상품'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일부를 구매하는 거죠."
스타벅스는 지난 26일 '도도새 작가'로 알려진 김선우 작가와 협업해 토트백, 텀블러, 머그컵 등을 '아트 컬래버레이션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2년 전부터 김 작가에 푹 빠진 이혜영(35)씨는 이날 0시가 되자마자 온라인에서 일부 상품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갖고 싶었던 토트백은 1분 만에 품절됐다. 당일 아침 매장 문이 열리기 30분 전부터 줄을 선 끝에 겨우 토트백을 구했다.
이씨는 김 작가의 그림이 인쇄된 상품을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다고 한다. 날지 못해 멸종된 도도새를 통해 역설적으로 꿈과 희망을 그리는 김 작가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대표적인 '레드칩 작가'(젊은 신진 작가)다. 이씨는 꼬박꼬박 전시를 챙기고 경매 사이트도 기웃거렸지만 작품은 소장하지 못했다. "작품 판매가를 알아봤는데 소품도 엄청 비싸더라고요. 구매하려 해도 제작 기간 3년은 기다려야 한대요. 그림은 당장 살 수 없지만, 컵과 텀블러는 지금도 가질 수 있죠."
예술을 향유하려는 이들의 관심이 '아트 컬래버 상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작가와 적극적으로 협업해 한정판으로 만든 상품이 차별화된 소비를 추구하는 '아트슈머(art+consumer·소비활동으로 문화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
커피 브랜드 일리카페가 출시한 '이우환 에디션' 컵 세트는 유튜브에서 언박싱(구매 상품의 포장 뜯기) 영상까지 올라왔을 정도로 인기다. 이우환 작가는 현존하는 국내 작가 중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싸다. 일리카페는 지난 19일부터 '이우환 에디션' 200세트를 한정 판매하면서 "작가의 사인과 고유의 시리얼 번호가 남아 있어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홍보했다. 가격은 10만~12만 원에 이르지만, 10분 만에 전량 매진됐다. 현재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 리셀(한정판을 구매해서 비싸게 되파는 행위) 가격이 최대 40만 원에 올라와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갤럭시S24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리카르도 카볼로 등 유럽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담은 액세서리를 출시하기도 했다.
아트 마케팅 상품의 흥행이 일종의 '립스틱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립스틱 효과는 경기 불황기의 특이한 소비 현상으로, 구매 만족도가 높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사치품의 판매량이 증가하는 것을 지칭한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품 8개 경매사가 진행한 온·오프라인 경매 낙찰 총액은 약 1,535억 원이었는데 이는 미술 투자 붐이 일었던 2021년(약 3,294억 원)에 비해 반토막 수준이다. 경기를 크게 타지 않는 '큰손 컬렉터'보다 소품과 신진 작가를 중심으로 소장하는 '영 컬렉터'의 지갑이 더 많이 닫혔다는 게 갤러리 관계자들이 전하는 시장 분위기다.
'예술을 위한 마케팅'이 아닌 '마케팅을 위한 예술'로 작품이 수단화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점이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시계 브랜드 스와치가 1996년 '백남준 에디션'을 출시한 것처럼 아트 마케팅은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다"면서도 "과거에는 예술가를 후원하고 지지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면, 오늘날엔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소비자의 욕망을 부추기는 마케팅 용도로 예술이 활용되는 것은 한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