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연준이 소개하는 중국의 사상가 ‘장자’의 한 대목이다. 그냥 장자가 아니라 ‘시인 박연준이 소개하는’ 장자라고 하면 어쩐지 다르게 읽힌다. 왜일까. 같은 이야기를 독자들은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세계의 80억 인구가 동시에 같은 책 한 권을 읽는다면 판본은 80억 개로 나뉠 테다. 누군가의 ‘독서록’이 마음을 끄는 이유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이들의 기록과 사유라면 더욱 그렇다.
박연준·김언 시인과 은유 작가가 새해 들어 독서록과 함께 찾아왔다. 박 시인은 '듣는 사람'을, 김 시인은 '오래된 책 읽기'를, 은유 작가는 '해방의 밤'을 냈다.
근대 소설가 이태준의 ‘무서록’을 시작으로 39권의 고전을 소개하는 ‘듣는 사람’은 '작가들이 사랑하는 산문가'로 불리는 박 시인이 읽은 책을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 추종자였던 천방지축 20대 시절의 그와 일기 첫 줄에 매번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이상의 소설 ‘날개’의 첫 문장을 써내려 가던 10대 때의 그가 책 속에 있다.
주로 2000년대에 출간된 28권의 책을 이야기하는 ‘오래된 책 읽기’는 등단 26년 차가 된 김 시인의 독서 산문집이다. “빛을 사랑하는 두더지가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동화(‘양 한 마리 양 두 마리’)에서부터 인문,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글과 이를 둘러싼 질문을 나눈다. 청소년 노동자, 미등록 이주 아동 등을 만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꾸준히 글로 써온 은유 작가 역시 ‘해방의 밤’에서 “삶의 질문에 대한 힌트”를 준 책을 공유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계속되는 고민 앞에서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를 이끈 책의 목록과 이야기들이다.
글을 쓰는 이들이 ‘독서’라는 주제로 펴낸 책에서 입 모아 이야기하는 건 한 편의 글이 읽는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는 것. “어떤 책을 읽든 나는 조금씩 변한다”는 김 시인이나 “어떤 이야기는 읽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는 박 시인. 그리고 “나를 변화시킨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조금 더 애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은유 작가까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제쳐두고라도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으로 나선 작가의 독서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