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직권 있나 ②남용했나 ③의무 없는 일... 세 조건 충족한 혐의 하나도 없었다 [양승태 무죄 이유]

입력
2024.01.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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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직권남용 관련 법리 깐깐한 적용
47개 혐의마다 "범죄 증명 없다" 판단
4시간 반 마라톤 선고... 양, 만면에 미소

헌정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장 구속기소로 시작된 '세기의 재판' 1심은 결국 전부 무죄로 결론이 났다. 법원은 '일부 사법행정권 남용이 있었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범행에 해당할 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시하는 등 공동범행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부장 이종민)는 26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앞서 핵심 쟁점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직권남용 인정 안 한 1심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그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경우 성립한다. 현행법상 판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하기 때문에, 다른 재판부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다. 권한이 없으니, 남용할 수도 없다는 것. 재판부는 이렇게 범죄 구성요건을 세부적으로 쪼개 정석대로 해석했다. 각 공소사실에 대해서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하는지 △직권이 있다면 남용했는지 △권한을 남용했다면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 등을 나눠 꼼꼼히 판시했다. 임 전 차장이나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행위가 이에 해당할 때는 양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 여부를 따졌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네 가지였다.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을 미끼로 거래한 혐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 △판사 비위 은폐·축소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를 대법원장 격려금으로 사용한 혐의 등이다. 이들 혐의에 대해 법원은 임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 등 혐의가 일부 인정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과의 공모 관계가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는 원칙대로다.


'재판거래' 의혹도 일축

법원은 재판 거래 의혹의 핵심 중 하나였던 2014년 6월 강제동원 재상고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주심 대법관에게 원고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한 행위에 대해 대법원장으로 직무 권한이 없다고 봤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기업 측을 대리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만난 것을 공무상 비밀누설이라던 검찰의 주장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재판장 지위에서 얻은 직무상 비밀이 아니고 내심에서 자연스레 갖게 된 추상적 의견일 뿐"이라고 결론 냈다.

특정 판사에 인사 불이익을 준 것은 '인사 재량'으로 봤다. 법관의 인사원칙과 기준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령이 없다는 점이 근거였다. 다만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 시도를 위한 보고서 작성 지시에 대해선 임 전 차장이 직권을 남용해 법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봤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가담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일부 재판 개입이 인정된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산고법 판사 뇌물 사건과 관련해선 고 전 대법관의 재판 개입이 있었다고 봤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하진 않기 때문에 직권남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두 눈 감은 양승태… 선고 후에야 '미소'

이날 법정 방청석은 빈자리 없이 꽉 찼다. 사태에 연루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도 재판을 지켜봤다. 이례적으로 주어진 10분간의 휴정 시간에 유 전 수석연구관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재판정에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선고 내내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던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이 끝난 뒤에야 활짝 웃으며 박·고 전 대법관과 악수를 나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된 지 5년 만이었다. 이로써 의혹 연루 전·현직 판사들 14명 중 11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근아 기자
최다원 기자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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