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타깃 삼은 테러가 반복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또 폭력 범죄의 희생양이 됐다. 주기도 빨라지고 선거권도 없는 15세 소년이 범행하는 등 공격 주체의 범위를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충격파는 더하다. 일상화한 정치혐오가 폭력으로 분출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찰도 부랴부랴 정치권 주요 인사들의 신변보호 강화에 나섰다.
이번 사건은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이 대표가 지지자를 가장한 범인에 의해 목을 찔린 지 불과 3주 만에 발생했다. 기존 정치인 테러와는 결이 다소 다르긴 하다. △외부 공개일정이 아닌 개인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범죄가 이뤄진 점 △피의자가 적극 정치 참여층으로 볼 수 없는 미성년자라는 점 등이 그렇다.
우선 범인 A(15)군은 배 의원의 동선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4·10 총선이 다가오면서 외부 행보가 잦은 의원들의 일정이 노출되는 일은 다반사지만, 공격 지점을 특정했다는 건 배 의원의 하루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배후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전날 원내대책회의 직후 "이해가 잘 안 된다. 상당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범인의 정체가 15세 중학생이라는 것도 범행 동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간 정치 테러는 대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성인의 소행이었다. 2014년 극우 커뮤니티 회원이던 고3 학생이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등이 참석한 토크콘서트에 사제폭탄을 투척한 사건 정도가 예외다. 연령대가 급격히 낮아진 부분은 정치인 테러의 세대 경계가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물론 정치인을 해치겠다는, 확실한 '목적성'을 갖춘 점은 다른 테러와 유사하다. A군은 배 의원을 공격하기 전 "국회의원 배현진입니까"라며 두 차례나 그의 신원을 확인했다. 전문가들도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치명상을 입기 쉬운 머리를 주저 없이 집중 가격했다"며 "접근할 때 모자, 마스크로 얼굴을 숨기고, 흉기도 보이지 않게 하는 등 계획범죄 정황이 짙다"고 분석했다.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10대 테러범까지 나온 배경엔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정치혐오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작극과 헬기 특혜 논란으로 변질됐던 이 대표 피습 사건처럼 이번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자를) 반 죽여 놨어야지" "다음은 ○○○" 등 폭력을 희화화하는 조롱 글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실제 A군도 정치 관련 글이나 영상을 단체채팅방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종종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 탓 공방으로 일관하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 미래 유권자들에게도 깊숙이 파고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 테러 양상은 모방 범죄를 부추길 수 있어 더 우려된다.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을 지낸 김상균 백석대 교수는 "편향되고 왜곡된 정치적 견해를 사실로 받아들이다 테러를 접하면 '또 다른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여겨 모방할 위험이 있다"며 "합리적 판단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10대, 정신질환자는 (이런 자극에) 더욱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가뜩이나 총선 정국이 가열되면서 주요 인사들의 테러 위협 대책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 대표 피습 후 이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근접 신변보호팀을 배치한 경찰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 등 군소정당 지도부에도 신변보호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치인 테러는 총선 판도를 출렁이게 할 수 있는 매머드급 변수라 대책 수위를 대폭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