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배우 윤여정은 하고 싶은 역할이 따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송혜교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 하면 흉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캐릭터를 갈망하는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더 집중한다는 그의 말에서 뚜렷한 신념이 느껴졌다.
윤여정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도그데이즈'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와 MZ 라이더, 싱글 남녀와 초보 부모까지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이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윤여정은 한 성격 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 역을 연기했다.
윤여정과 '도그데이즈'의 만남은 김덕민 감독과의 인연으로 성사됐다. 윤여정은 김 감독이 조연출이었을 때 그를 만났다. 함께하며 전우애가 생겼고 '감독님이 입봉하면 출연하리라'는 결심을 했단다. 과거를 떠올리던 윤여정은 "(김 감독이) 19년이나 입봉을 못 했다고 해서 가슴 아팠다"고 이야기했다.
'도그데이즈'의 민서 역을 접한 후에는 상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장난스레 말했다. 그러나 윤여정에게 민서는 의미가 큰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민서 캐릭터의 이름이 원래는 '윤여정'으로 설정돼 있었단다. 윤여정은 민서와의 싱크로율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에는 "안 재봐서 모른다"고 답했다.
윤여정은 나문희 김영옥과 함께 극장가를 찾게 됐다. 윤여정의 열연이 담긴 '도그데이즈'와 나문희 김영옥이 출연한 '소풍'은 모두 다음 달 7일 개봉한다. 많은 이들이 오랜 활약을 이어온 세 사람을 대배우라고 부르곤 하지만 윤여정은 "대배우가 아니라 노배우다"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도그데이즈'와 '소풍'이) 모두 잘 된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을 '노배우'라고 표현했으나 윤여정이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윤여정은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수상 후 외국에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식사 시간에는 밥을 시켜 드시라고 하더라. '선생님은 아카데미 배우라 시켜도 된다'고 했다"는 게 윤여정의 설명이다.
물론 윤여정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세계를 무대로 한국을 빛내고 있다. '성난 사람들'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골든글로브에 이어 에미상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윤여정은 "스티븐 연에게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한국계 캐나다인 샐린 송 감독 또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데 윤여정은 그가 '똑똑한 여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되니 대견하다"고 이야기했다.
윤여정은 목표도, 하고 싶은 역할도 없다고 했다. 그는 "역할이 왔을 때 '이걸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편이다. 앉아서 '송혜교 같은 역할 하고 싶다' 하면 흉하지 않나. '사랑하는 역할 해 봤으면' 하면 이상할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윤여정다운 소신이었다.
물론 목표가 없다는 사실이 연기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윤여정은 "난 성실하지 않은 꼴을 못 본다"고 했다. 연기가 곧 일상이 됐다고도 전했다. 윤여정은 "'하우 투 겟 투 더 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에 어떻게 가나요?)'라고 길을 물었는데 '프랙티스(연습)'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 속 '프랙티스'는 어찌 보면 그의 연기 인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지 않을까.
'도그데이즈'는 다음 달 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