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술관서 한국 전공자 못 찾아 아우성... 한국근대미술 개설서 쓴 이유죠"

입력
2024.02.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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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한국의 미술들' 출간한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서양미술사학자인 김영나(73)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뼛속까지' 박물관인이다. 부친은 국립중앙박물관 초대 관장을 20년 넘게 지낸 고(故) 김재원 박사로, 최초의 부녀 박물관장의 역사를 썼다. 김 전 관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권력에 맞서 박물관을 지킨 에피소드로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그는 박물관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상업적 전시를 원하는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경질됐다.

김 전 관장은 퇴임 후 미술사에 획을 긋는 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2017년 '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2017), 2020년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2020)에 이어 얼마 전 '한국의 미술들'(워크룸프레스 발행)을 냈다. 김 전 관장을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표지에 제 이름이 너무 크지 않나요?" 박물관계의 전설이자 원로인 그는 신간 표지를 앞에 두고 수줍은 듯 미소를 지었다.

한국 근대미술 연구 빈약... 개설서 쓰려 노력

책의 부제는 '개항에서 해방까지'. 조선이 서구 국가들과 수교를 맺은 1880년대부터 1945년 광복 사이 격동기에 한국 미술이 걸은 길을 총망라했다. 서양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일본국제교류기금 펠로십(1990년)을 밟아 일본 연구자들과 교류한 김 전 관장은 왜 지금 '한국의 근대미술'을 집중 조명했을까.

"20세기는 모든 것이 섞이는 시대였어요. 한국 근대미술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은 유럽에서 배웠죠. 한국 미술의 위치나 성격을 알려면 일본, 유럽, 그리고 한국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해요."

김 전 관장은 한국 근대미술 개설서가 부족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20~30년간 근대미술 연구는 회화뿐 아니라 삽화, 전시, 제도 등으로 확장됐고 지금도 주요 작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이 남아 있다. 세계미술사 속에서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을 짚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김 전 관장을 쓰도록 추동했다.

"근대성은 단순히 시기적인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의 표현이다." 책에서 근대를 표현한 구절이다. 역사를 단절된 구획이 아닌 흐름으로 인식하는 미술사가인 김 전 관장은 이전 시기와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 생활, 인물, 제도 등을 조명한다. 그간 근대미술은 회화, 조각을 중심으로 서술됐으나 그는 건축, 공예, 사진, 전시 등을 비중 있게 다룬다. 김 박사가 개인 소장해온 1937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기념회 총회 사진 등 그간 단행본에 실린 적 없는 귀한 도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 '한국학 연구'로 이어져야

김 전 관장은 해외 박물관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절감한다. 해외에서 전시를 하려고 해도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 드물어 적절한 큐레이터를 찾을 수 없다는 아우성이 퇴임한 그의 귀까지 들린단다. 케이팝 등 문화 영역에서 한국의 인기가 높은 지금이야말로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전시와 공연도 좋지만 일회성 행사는 그걸로 끝이에요.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하나의 학문으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대학과 대학원이 중요해요. 그래서 한국에서 실제 보고 경험하며 찾아낸 주요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서를 쓴 거죠."

요즘 김 전 관장은 저서들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 중이다.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학술출판사인 브릴(Brill) 출판사에서 영문판으로 출간된다. 신간도 영어로 옮겨질 예정이다.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갖는 해외 연구자들이 많아졌어요. 이들이 한국미술사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책이 필요해요. 영문판이 나오면 올해 10월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한국학 스터디그룹과 북토크를 하기 위해 뉴욕에 가려고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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