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1시경. 체감온도가 영하 13도에 이를 정도의 강추위에도 서울 망원동 한 도로변에는 150여명의 사람들이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대책 없이 국민 선동하는 루시법 반대한다’, ‘의견 묵살 밀어 붙이기식 루시법 반대’라는 문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최소 60대 이상의 노년층이었습니다.
반려동물 번식장, 경매장, 펫숍 등을 운영하는 이들은 이날 근처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동물보호법 개정안(‘루시법’) 설명회를 규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루시법은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을 말합니다. 루시법의 주요 골자는 반려동물 경매업을 금지하고 펫숍에서 판매 가능한 동물을 6개월령 이상으로 제한한 겁니다. 이날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법안에 대해 업계 종사자들을 모아놓고 법안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화 대신 거리로 나선 겁니다.
경기 김포시에서 아버지와 함께 반려동물 경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태준 씨는 루시법에 대해 “모든 종사자들을 범법자로 보고 만든 법”이라며 “지나치게 강압적인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최근에 문제가 됐던 불법 번식장과 신종 펫숍 등 각종 변칙 영업의 온상으로 지목받는 것에 대해서도 “경매장에서 캠페인을 통해 변칙 영업 퇴출 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자신들이 지목당하는 게 억울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경기 하남시에서 번식장을 운영하다 지금은 펫숍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훈 씨는 “이 법대로라면 생산업자, 판매업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며 “누가 다 자란 6개월령 이상의 개를 분양받고 싶어하느냐”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전 ‘강아지 공장’ 사건처럼 발정유도제를 사용해 번식을 늘리는 행태는 지금은 거의 없다”며 “일부 양심 없는 불법 번식장도 있지만 경매장에서 애초에 출입을 차단한다”며 업계의 자정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집회를 주도한 반려동물협회 이경구 사무국장은 “음주운전하는 사람이 있다고 모두를 운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라며 “영국의 법을 그대로 가져오는데 그게 한국 실정에 맞느냐”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그는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유통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지만, 이 법안 발의 이후로 모든 논의를 중단했다”며 “이 법안은 우리더러 문을 닫으라는 법안인 만큼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업계 종사자들은 ‘일부의 문제’라고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해 7월, 경매장 운영업자가 불법 번식장 개체를 경매장에 반입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사건 당사자인 반려동물협회 홍성호 이사는 이날 집회 단상에 올라가 “후원금으로 선량한 국민들을 등쳐먹는 동물단체들”이라며 원색적인 비난 발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온 홍 이사는 무허가 번식업장 개들을 들여왔다는 의혹에 대한 동그람이의 질문에 “번식업자 중 예전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던 분들이 있어서 생긴 오해”라며 조사 중인 경찰에 이 내용을 모두 해명했다고 밝혔습니다. 홍 이사는 현재 변호사를 선임해 최초 보도한 언론사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집회 주최 측은 당초 루시법 설명회장에 들어가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들이 설명회 장소를 변경하면서 이들의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주최 측은 이후 인근에 위치한 동물권행동 ‘카라’ 사무실까지 행진하며 루시법 추진에 항의했습니다.
같은 시각, 카라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들의 연대모임 ‘루시의 친구들’은 서울 공덕동 모처에서 업계 종사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루시법 설명회에는 한국애견협회, 한국애견연맹 등 반려견 사단법인과 소규모 브리더, 행동 전문가, 법률 전문가 등 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카라와 동물단체들은 그동안의 구조 현황을 소개하며 “불법 번식장의 온상이 바로 경매장”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설명회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루시법에 대해 찬성 의견보다는 우려점을 전달했습니다. 반려견 교육 전문가 이웅종 연암대 동물보호계열 교수는 “많은 소규모 브리더들이 ‘6개월령 이상 판매 가능’이라는 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카라 전진경 대표는 “펫숍과 같은 제3자 거래의 경우 6개월령 이상만 판매가 가능하지만, 브리더-보호자 간 거래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국회 법조문 작성 과정에 착오가 있었고, 추가 논의 과정에서 수정될 것”고 해명했습니다.
또 다른 규정에도 소규모 번식업자들이 우려하는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개를 낳는 부모견의 은퇴 시기입니다. 이들은 루시법에 제시된 ‘부모견 5세 이후 은퇴’라는 조항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브리더는 “소규모 브리더의 경우 부모견 10마리 안으로만 운영하고 5세 이내에는 고작 두세 번 출산한다”며 “건강 상태가 괜찮은데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은퇴하게 하는 건 너무 불합리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전 대표는 “충분히 논의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참석자 대다수는 ‘경매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동의했습니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루시법에 대해 “동물보호 측면과 전염병 예방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유통 단계를 단순화하면서 동물이 불안감에 노출되지 않고, 감염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박 사무총장은 “번식하는 개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유전병 발병 가능성도 높다”며 “번식업자들이 무작정 숫자만 늘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신중론도 있었습니다. 한국애견연맹 관계자는 “오늘 이 자리에서 경매장의 문제를 처음 제기받았다”며 “사실관계를 파악해 본 뒤 신중히 검토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참석자들 역시 “산업계와 함께 면밀히 논의해 법안 수정 과정을 거쳐보자”고 약속하며 설명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장외 집회에 나선 번식업자들과 산업계 우군 확보에 나선 동물단체 사이에서 루시법 논의가 불붙는 모양새입니다. 이 논의가 반려동물 업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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