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양돈농장 '팜큐브'. 축사 내부를 관찰하는 폐쇄회로(CC)TV 화면으로 보니 돼지들이 줄줄이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다. "돼지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일 때 나오는 자세"라고 이 농장 박계영 대표가 설명했다. 축사 내부 온도는 26~28도, 이산화탄소 농도는 3,000ppm 미만이다.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고 환기하는 장치가 설치돼 1년 내내 이 상태가 유지되는 팜큐브는 100% 농가 자부담으로 '스마트 축산' 기반을 구축한 전국 308개 농가 중 하나다.
박 대표는 2020년 50억 원 가량을 들여 준공한 3,173㎡의 밀폐식 축사에서 돼지 약 1만 마리를 키운다(연간 출하기준). 스마트 축산으로 전환한 뒤 새끼 돼지의 평균 체중은 구형 축사 시절보다 약 4kg 늘었다. 매출은 1억 원 이상 올랐다. "돼지들이 기온과 습도 변화에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항생제 투여량을 줄여도 병에 잘 안 걸린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스마트 축사 준공 후 악취 민원이 사라진 것도 큰 변화다.
스마트 축산은 각종 정보기술(ICT) 장비와 악취저감 시설을 갖추고, 빅데이터로 농민의 사육 노하우를 대체해 가축 건강을 통합 관리하는 '지능형' 축사로 운영되는 축산업을 뜻한다.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악취 문제 해결은 물론, 과학적인 방역으로 감염병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미래형 축산 기술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축산농가 약 11만1,700호 가운데 스마트 축산 관련 장비가 보급된 곳은 7,265호로, 보급률이 6%에 그친다.
농가들이 스마트 축산 전환의 어려움으로 꼽는 요소는 단연 비용이다. 적게는 1~2억, 많게는 수십 억 원이 들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농가에선 축사가 오래 되면 해마다 수천 만원씩을 유지·관리에 써야 한다"고 했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 스마트 축산 전환에 투자하는 비용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도 농가 입장에선 목돈이니 정부가 나서서 지원 사업을 펴는데도 소극적인 농장주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지능형 축사가 구형 축사보다 악취를 얼마나 저감하는지, 전염병 감염을 얼마나 줄이는지 등의 효과를 입증한 연구자료가 부족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스마트 축산에 대한 표준화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농민들을 설득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것 역시 걸림돌이다.
이에 정부는 먼저 스마트 축산 전환에 성공한 농가가 멘토가 돼 직접 다른 농장을 교육하는 체계를 만들고 있다. 박 대표도 이 멘토링에 참여할 예정이다. 박 대표의 도움으로 스마트 축사를 만들어 지난해 5월부터 가동하고 있는 충남 예산의 호은농장은 돼지 항생제 구입에 쓰던 비용을 구형 축사 때보다 85% 줄였다. 충남 서산의 '캠프 넘버 원(No. 1)' 농장도 박 대표의 멘토링 이후 올해 안에 스마트 축사 준공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스마트 축산 농가인 전북 군산의 명월농장은 지능형 장비로 한우 약 200마리를 키운다. 소는 돼지보다 상대적으로 날씨 변화에 덜 민감해 밀폐 공간에서 키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스마트 축사 전환 비용이 덜 든다. 명월농장은 미생물 생성기와 각종 정보통신기술(ICT) 장비를 구축하는 데 1억5,000만 원(자부담 70%)을 들였다.
효과는 뚜렷했다. 맞춤형 사료를 만들어 먹이면서 사료 구매비를 20% 낮췄다. 분뇨 냄새도 줄었다. 한우마다 목에 '소 전용 스마트 워치'를 달아 체온과 질병 감염 여부를 실시간 측정한다. 8일 현장에서 만난 신동규 명월농장 대표는 "스마트 축산 전환 이후 소들이 더 건강해져 9등급 최상품을 출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농장의 한우 제품은 지난해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근내지방도(마블링) 기준 9-3등급을 받았다. 근내지방도는 1~9등급으로 나뉘고 각각 세 단계가 있는데, 9-3은 가장 좋은 등급이다.
정부는 명월농장에도 스마트 축산 멘토 역할을 요청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선도 농가들이 지능형 축사 보급과 확산에 기여할 수 있도록 멘토-멘티 방식의 실습교육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