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출연 후 A씨 가족은 붕괴됐다. 그는 남편과의 양육 갈등을 풀기 위해 2022년 12월 MBC 상담 프로그램 ‘오은영리포트-결혼지옥’에 나갔다. 재혼한 남편이 7세 의붓딸의 엉덩이를 손으로 찌르며 ‘주사 놀이’를 한 장면을 두고 성추행 비난이 일었다. 남편은 9개월의 경찰·검찰 조사 끝에 법적으로 무혐의를 받았지만, 부부는 이혼했다. 아이는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방송 영상을 자극적으로 재가공한 짧은 영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아이를 겨냥한 성폭력성 댓글이 쏟아졌다. A씨는 지난해 인터넷에 글을 올려 “아이에게 ‘친족 성범죄 피해자’ ‘가해자들의 자녀’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연예인 가족들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비연예인이 나오는 각종 상담 프로그램이 늘면서 출연하는 아동들의 인권 침해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목욕하는 모습, 이혼한 부모와 같이 살고 싶다며 울거나 무릎 꿇고 비는 모습, 아동이 가족을 때리거나 욕설하는 모습, 자신의 성기나 엄마의 가슴을 만지는 모습 등이 여과없이 방송된다. 방송은 계속 재방송되고 앞뒤 맥락없이 재가공돼 유튜브 등에 빠르게 퍼진다. 아이가 방송 출연에 동의했는지, 성장 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슷한 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매일 일어난다.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자녀 양육(parenting) 과정을 공유(share)하는 ‘셰어런팅’(sharenting·‘공유+양육’의 합성어)이다. 2021년 아동보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0~11세 자녀를 둔 부모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자녀 사진·영상을 올린 적 있다"(86.1%), "주기적으로 올린다"(84%)는 응답자가 대다수였다. "자녀의 동의를 구한 적이 있다"고 답한 부모는 44.6%뿐이었다.
너무 흔해 경각심이 없을뿐, 방송과 SNS에서 아이들의 얼굴, 이름, 사는 곳 등의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우선 ①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아이 개인정보는 신분 도용, 유괴, 사기 등 범죄에 사용될 수 있다. 영국의 금융기업 바클레이스(Barclays PLC)는 2030년 셰어런팅으로 최대 700만 건의 신분 도용이 발생하고 온라인 사기로 피해 총액이 8억 달러(약 1조 688억 원)에 이를 수 있따고 경고했다. 성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호주 사이버안전위원회는 소아성도착증 범죄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의 절반 정도가 부모가 SNS에 올린 자녀 사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선임매니저는 “일본에서는 SNS 정보로 아동을 납치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②피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아이가 성장했을 때는 어린시절 사진이 이미 전 세계에서 유통된 이후라 막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소송으로 번진 사례도 있다. 캐나다에 사는 13세 청소년은 2016년 “부모가 10년 동안 SNS에 올린 유아시절 사진이 내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약 3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991년 밴드 너바나의 '네버 마인드' 앨범 표지에 '4개월 난 알몸 아기'로 등장한 스펜서 엘든(32)은 2021년 사진 사용이 아동 성착취에 해당한다며 너바나에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앨범 제작 당시 부모는 사진 사용료 200달러(현재 환율로 약 26만원)에 사진 사용을 허락했다.
해외에선 아동 초상권 관련 법과 인식 모두 강화되는 추세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부모 중 한 명이 자녀 사진 공개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원이 아동 초상권 공개를 금지할 수 있게 한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프랑스에는 부모가 자녀 동의 없이 SNS에 사진을 공유하면 최대 징역 1년, 벌금 4만5,000유로(약 6,000만 원)에 처하는 법이 이미 있는데도 아동 초상권을 더욱 엄격히 제한한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2018년부터 부모가 7세 이하 자녀의 사진을 SNS에 올리면 최고 5,000만 동(약 260만 원)의 벌금형을 받는다. 과거 딸들의 모습을 공개했던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해 처음으로 두 딸의 얼굴을 가린 가족 사진을 올린 것을 두고 셰어런팅을 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외국에선 아동의 방송 출연 또한 엄격하다.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과거엔 아동이 방송 나와도 흔적이 남지 않았지만 지금은 검색만 하면 좀비처럼 계속 살아나는 시대"라며 "해외에서는 아동의 방송 출연을 최소화하고, 아동청소년 보호법에 방송 촬영에 관한 세세한 규정을 명시해 지키도록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변화는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지난해 '온라인 콘텐츠 속 아동인권보호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냈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올해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법'(가칭) 제정을 추진한다. 하지만 시청률만 쫓는 방송사, SNS 조회수를 욕심내는 부모,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까지 더해져 아동 초상권, 인격권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윤성옥 교수는 "아동 초상권은 부모 소유가 아니라는 점을 많은 부모들이 간과한다"며 “아동의 초상권은 엄격히 얘기하면 아동이 가진 인격권·재산권이고, 사진 공개가 아동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