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을 처음 내놓을 때만 해도 업계 관계자들은 성공 가능성에 반신반의했다.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 불닭볶음면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구매할 수는 있지만 평소에 자주 즐기기 어려워 재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 불닭볶음면은 국내를 넘어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삼양식품을 연 매출 1조 원을 바라보는 글로벌 식품사로 만들었다. 불닭볶음면이 한 번쯤 도전해봐야 하는 'K푸드'로 알려지면서 단순히 식품의 역할을 넘어 한국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기억되도록 한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삼양식품에 따르면 회사의 지난해 1~3분기 매출은 8,662억 원으로 무리 없이 2023년 연 매출 1조 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5년 전 연 매출이 5,435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여느 식품사보다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 같은 성과에는 수출의 힘이 컸다. 2016년 26%(930억 원)였던 삼양식품의 수출 비중은 지난해 1~3분기 67.84%(5,876억 원)로 높아졌다. 경쟁사인 농심의 수출 비중은 40%대, 오뚜기는 10%대에 그친다. 해외 매출 중에서도 스낵 및 간편식을 포함한 불닭브랜드의 비중은 80%를 넘는다.
삼양식품은 해외 공장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농심과 달리 수출 물량 전량을 국내 생산하면서 수출액을 키웠다. 현지 생산보다 비용이 더 들지만 현지 직접 투자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국내 공장은 현지 공장보다 관리가 쉽고 해외 현재의 정치적 상황·문화적 차이 등으로 영향을 받을 위험성도 적다"고 말했다. 회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 국내 생산 후 수출하면서 고환율 수혜를 입어 높아진 원자잿값과 물류비 부담을 덜어내기도 했다.
홍보도 따로 하지 않은 불닭볶음면이 이처럼 빨리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유튜브 바이럴 마케팅 덕분이다.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에 불닭볶음면 먹기에 도전하는 영상이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번져나갔다. 이후 덜 맵게 먹기 위해 여러 부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가 등장하면서 불닭볶음면 조리 과정이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불닭브랜드를 수출 중인 90여 개국의 매출 비중을 보면 중국 35%, 동남아 30%, 미주 15% 순이다. 중국에서는 짝퉁(가품) 불닭볶음면이 나올 정도로 수요가 늘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불닭볶음면을 오믈렛처럼 부친 길거리 음식이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현지 식품사가 구현하기 어려운 한식의 맛을 느낄 수 있고 현지 라면보다 품질이 좋아 인기를 끌었다.
매운맛을 즐기는 현지인도 늘고 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중국도 고용 불안 등으로 청년들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재미 삼아 불닭볶음면을 체험했다면 요즘 고객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이 '반짝 흥행'으로 남지 않도록 꾸준히 제품 가짓수를 늘렸다. 매운맛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바네로라임불닭볶음면'(미주), '야키소바불닭볶음면'(일본) 등 현지 특성에 따라 맞춤형 제품을 개발했다. 각 나라마다 현지 법인을 세우고 판로를 적극적으로 확장한 것도 주효했다. 2019년 일본, 2021년 미국·중국에 이어 2023년 설립한 인도네시아 법인도 최근 영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 할랄 인증을 받는 등 일찌감치 무슬림 시장 진출의 기반을 다져놓은 것도 수출 규모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삼양식품은 올해 다른 품목의 수출을 확대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는 계획이다. 프리미엄 건면 브랜드 '탱클'은 미주에 이어 유럽, 오세아니아, 중동으로 영토를 확장한다. 탱글은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넣고 조리하는 해외 음식 문화를 반영해 물을 버리지 않고 졸여서 만들도록 개발됐다.
아울러 2025년 준공 목표로 밀양 제2공장을 짓는다. 밀양 제1공장과 함께 가동하면 수출용 라면 생산량은 연간 6억 개에서 12억 개로 늘어나게 된다. 나라별로 유통 판로도 넓힌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미국 법인은 월마트, 코스트코 등 주류 채널 유통망을 확대하고 중국 법인은 온라인 채널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며 "주요 브랜드를 중심으로 현지 시장 상황에 맞게 전략을 세분화할 방침"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