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엔 온통 각혈 자국...아이 다 키운 아빠는 그렇게 삶을 놓았다

입력
2024.01.26 12:00
10면
외로운 죽음의 현장 들추는 유품정리사
김새별·전애원 '남겨진 것들의 기록'
"사는 것처럼 살자고 서로를 북돋아야"

55세 남성 A씨. 세상을 등진 뒤 2주 만에 발견됐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이혼한 A씨는 덤프트럭 운전기사로 생계를 이어 갔다. 아들 하나 딸 하나, 풍족하진 않았어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은 삐뚤어지지 않았고 졸업 뒤 취업해 객지로 나갔다.

그때 간경화 통보를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A씨는 의지가 없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갓 취직해 바쁜 아이들에겐 아프단 내색 없이 그저 "괜찮다" "바쁜데 오지 마라"는 말만 했다. 그러곤 조용히 숨졌다.

정리해보니 집 안은 너무 단출했다. 아팠다는데 약봉지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술과 토해낸 핏덩이 자국뿐이었다. 남겨진 숙제 같던 아이들을 다 키워냈으니, 이제 더 살 일도 없으니, 이대로 가겠다는 체념만이 가득한 풍경이었다.


"더 살 가치가 없다"며 조용히 죽는 사람들

유서 또한 단출했다. 병이 알려지길 원치 않았고, 자신이 숨을 거두고 몇 년 뒤에나 발견되면 어쩌나 걱정했고, 장례비용을 챙겼고,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고, 또 사랑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결론은 "너무 외롭다. 더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A씨는 그간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았던 것일까.

'남겨진 것들의 기록'을 쓴 김새별, 전애원씨는 유품정리사다. A씨처럼 홀로 죽은 이들의 현장에 가서 시신, 유품 등을 정리해 주는 직업이다. 책은 그간 고독사 현장에서 만났던, 코 끝이 시큰해지는 이야기들을 골라 담았다.

유품 정리는 꽤 어려운 일이다. 최우선은 부패한 시신 수습이다. 나중에 발견돼 부패 정도가 심해지면 질수록 시신은 녹아내리고 구더기와 벌레들이 들끓는다. 시취(屍臭·시신 냄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여름이라 해도 방진복에 방진 마스크 등을 뒤집어쓰고도 문과 창을 꼭 닫아놓은 채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간혹 고인을 기억하겠다며 유족이 고인의 물품을 챙기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시취 때문에 다시 내놓는다.

동시에 유족의 마음도 다독여야 한다. 현장 수습 과정에서 일기, 통장 등을 확보하고 유족들에게 건네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정을 본의 아니게 약간이나마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삶의 의지가 사라진 텅 빈 풍경이 괴롭다

그 무엇보다 괴로울 때는 저렇게 텅 빈 풍경을 만났을 때다. 옳은 방식이건 아니건, 살고자 하는 이들은 그래도 뭔가 손에 그러쥘 것들을 챙겨 둔다. 하지만 의지가 없는 사람은 그마저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텅 빈 공간뿐이다.

"어수선하고 더러운 현장에 가면 몸이 힘들다. 부패물은 물론이고, 치우고 또 치워도 나오는 물건에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처럼 언제든 훌쩍 떠나버릴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서는 마음이 지친다. 텅 빈 공간처럼 고인의 공허함과 허무함이 고스란히 덮쳐오기 때문이다."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고독사.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대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불어난 데다, 사회가 날로 복잡해지면서 취업, 실업 등 경제적 부침에 따라 고독해진 이들이 크게 늘어서다.

50·60대 중년 남성은 고위험군이다. 실직, 이혼 등이 곧바로 고립으로 이어져서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들도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예쁜 디저트와 반려동물 사진을 가득 올려둔 커리어 우먼인데, 집은 쓰레기장 수준인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이들 또한 마음 한편은 이미 무너진 고독사 위험군이다.

행복과 희망 ... 억지로라도 끌어내야 할 것들

결론은 어떻게든 체온을 비벼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저런 당부의 말을 거듭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돈과 시간과 마음을 썼다면 미안해하고 아낄 게 아니라 행복한 시간으로 돌려줘야 한다." "그렇다. 희망은 자가발전이 잘 안 된다. 혼자서 아무리 기를 써봐야 쳇바퀴 위를 구르는 것 같아 지치기 십상이다.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꿈꿀 때 희망이 생겨난다."

그러고 보면 2018년 '외로움부'를 만들었던 영국이 제일 먼저 손댄 것은 공동체 복원 프로그램이었다. 외로움에는 함께하는 활동이 보약이다. 저자는 함께하는 활동의 핵심을 한마디로 압축해 뒀다. "사는 동안에는 사는 것처럼." 사는 것처럼 살자, 서로를 북돋아야 할 말이다.

조태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