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당시 현대차그룹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3개월 전 인수한 기아가 내놓은 미니밴 카니발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정 명예회장은 직접 차를 뜯어보기로 했다. 몇 시간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 명예회장 자택 뜰에 카니발이 놓였다. 밤낮으로 차를 살펴본 그는 한 달 뒤 당시 서울 여의도 기아 본사로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선 슬라이드 도어, 시트, 문틈 등에서 찾은 문제점들을 분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꼼꼼히 지적했다. 직원들은 카니발 곳곳을 뜯어고쳐 세상에 내놓았고 지금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표 미니밴으로 자리 잡았다.
카니발은 생산 중단될 뻔했던 위기를 딛고 다시 살아났다. 1999년 현대차는 차종 플랫폼 통합 등 기아 회생을 위한 여러 대책을 강구하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차는 단종했다. 하지만 카니발은 당시 그 대상에서 빠졌다. 앞으로 미니밴 시장이 커질 텐데 상품성을 개선한 카니발이라면 성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 이후 2001년 2월 경쟁력을 크게 높인 카니발이 나왔고 이를 포함해 1세대 카니발은 7년 가까이 국내외에서 79만4,000여 대가 팔려 기아를 살린 효자 차종이 됐다.
2005년 7월 기아는 카니발의 2세대 모델 '그랜드 카니발'을 출시했다. 회사 측은 26개월 동안 약 2,500억 원을 들여 이 차를 개발했다. 카니발을 프리미엄급 차로 차별화하겠다는 뜻에서 '웅장한'이란 뜻의 '그랜드'(Grand)를 붙였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능들이 대거 쓰였다. 버튼 하나로 옆문이 열리는 오토 슬라이딩 도어와 자동 뒷문 열림 기능, 뒷좌석 DVD 플레이어까지 장착돼 프리미엄 미니밴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시 신차 발표회에 참석한 정 명예회장은 "그랜드 카니발은 기존 미니밴 수준을 한 단계 이상 끌어올린 고품격 차량"이라며 "1세대 카니발이 기아를 회생시켰다면 그랜드 카니발은 기아를 세계 속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세울 것"이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기아는 2세대 모델 출시 후 무려 9년 만인 2014년 6월 3세대 카니발(올 뉴 카니발)을 선보인다. 3세대 카니발은 기존 모델 대비 전장은 15㎜, 전고는 40㎜ 줄어 한층 역동적이고 세련된 모습을 갖췄다.
또 이듬해인 2015년형 카니발을 출시하며 7인승 모델인 '카니발 리무진'을 추가해 고급화에 힘을 실었다. 이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카니발=의전용차' '카니발=연예인차' 공식이 만들어졌다. 카니발 리무진은 이전 모델에 비교해 훨씬 고급스럽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였고 다리·팔 받침이 적용된 'VIP 라운지 시트' 배치, 총 3개 열 시트 배열로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가솔린 모델이 추가된 것도 이 모델부터다.
6년 만인 2020년 8월 돌아온 4세대 카니발은 기존 미니밴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려고 애썼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고 최신 편의 사양과 첨단 기술도 곳곳에 쓰였다.
우선 전면부에는 발광다이오드(LED) 헤드 램프와 경계를 허문 라디에이터 그릴로 웅장한 인상을, 후면부는 좌우가 연결된 슬림한 리어콤비 램프로 강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어 스마트 파워 슬라이딩 도어, 2열 프리미엄 릴렉션 시트 등을 적용해 뒷자리 탑승자도 프리미엄 라운지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4세대 카니발은 미국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미니밴 차급 경쟁이 가장 치열한데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 Power)가 발표한 '상품성 만족도 조사'에서 카니발은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 1위에 뽑혔다.
지난해 11월 기아가 출시한 '더 뉴 카니발'은 이 4세대 카니발의 상품성을 개선한 모델로 최초로 하이브리드 모델이 추가돼 또 한 번 독보적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