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공식 외부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올해 들어 의욕적으로 진행해 온 민생 토론회마저 시작 30분 전에 급히 불참하기로 입장을 바꾸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대신 소수의 참모진을 불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정면충돌 양상 이후 대책을 숙의했다.
대통령과 여당 수장이 맞붙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풀 당사자는 결국 윤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이에 윤 대통령은 '출구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공천 갈등과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둘러싼 '김건희 리스크'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본보 통화에서 “김건희 여사가 사과받아야 할 피해자인지 사과해야 할 당사자인지를 떠나 윤 대통령도 이른바 ‘윤-한 갈등’의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약속대련은 아니었지만 결론은 약속대련이었던 것처럼 파국을 맞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양쪽 모두 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분노는 예상보다 크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결정적 계기는 김 여사 명품백 논란에 대한 접근법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번 논란이 최소한 여당 내부에서는 분출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 입장에선 논란에 대해 입을 열 생각은 있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고 본 것 같다”며 “자연스럽게 타이밍을 잡고 있었고 가장 우려했던 건 토끼몰이하듯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한 위원장이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자 배신감이 컸다는 의미다.
그 여파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준비하던 대국민 입장문 발표 계획이 꼬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회견, 특정 매체와 단독 인터뷰, 대국민 성명 등 다양한 형태로 김 여사 논란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함정 몰카’의 문제점을 강조하려 했지만, 한 위원장의 발언 이후 모두 공염불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윤 대통령과 참모진의 안이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한 여당 초선 의원은 “수도권 민심에 민감한 의원들의 경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김 여사 논란에 대해 매듭짓기를 원하고 있었다”며 “지금 대통령실의 태도는 원인을 제공해 놓고 사과도 하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지 않으면 국정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위기의식 또한 여권 내부에 적지 않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여사 관련 의혹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면 당정관계는 정말 수직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론 악화를 우려해 대통령실과 여권은 윤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에 명품백 의혹에 대한 경위와 후속조치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방안을 다시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윤 대통령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