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단통법(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폐지를 10년 만에 추진한다. 이동통신 추가 지원금 상한을 없애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보조금 확대 혜택은 일부 소비자에 몰릴 우려가 있는 데다 유통 시장 건전화와 거리가 멀어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정책'이란 비판도 나온다.
국무조정실은 22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다섯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단통법 폐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이 프리미엄 모델 중심으로 출시되고 스마트폰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어 단말기 구입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당초 민생토론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며 단통법을 포함한 각종 규제 개선 방침을 밝힐 예정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갑작스레 불참하면서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대신 주재했다.
단통법의 시작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이동통신사들이 비싼 요금제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등 보조금에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며 누구나 쉽게 가격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
특히 단말기 구입 시 제공되는 공시 지원금을 최대 33만 원으로 제한하고 공시 지원금 외에 보조금을 규제했다. 이렇게 하면 이통사마다 휴대폰 지원금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막아 사업자로 하여금 스스로 통신 요금 및 단말기값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키울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신형 단말기가 출시될 때마다 이통사와 유통점이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시장 과열이 되풀이됐다. 소비자들도 "더 많은 할인을 해준다는데 왜 불법이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덜 쓰게 되면서 오히려 소비자 혜택이 줄고 통신사만 배를 불린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 의지대로 단통법이 폐지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단통법 폐지는 법률 개정 사안이다. 현재 국회에는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단통법 폐지안이 계류돼 있는데 4월 총선 전에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으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정부가 단통법에서 도입된 선택 약정 할인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한다고 공언한 만큼 제도 설계를 놓고 여야와 협의해야 할 사항도 많아 보인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단통법 폐지 이전이라도 단말기 가격 인하 방안을 강구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해 유통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신업계도 공식 반응을 자제하며 단통법 폐지가 시장에 미칠 파장을 두고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이다.
그러나 단통법 폐지가 통신 시장 안정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온라인에서 휴대전화 불법 보조금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휴대전화 성지 글' 문화가 활개치는 상황에서 보조금 경쟁이 다시 불붙게 되면 발품을 팔거나 인터넷 검색이 어려운 고령 이용자에 대한 보조금 차별이 커질 수 있어서다. 또한 보조금 살포에 유리한 대규모 양판점은 유리하고 중소 판매점은 어려워질 수 있다.
'제4이동통신'을 공모하는 등 통신 시장 과점 체제 개선에 나섰던 정부가 느닷없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를 위한 정책을 내놨다는 불만도 나온다. 보조금 경쟁이 다시 불붙게 되면 이통 3사에 비해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 신규 이동통신사업자와 알뜰폰(MVNO) 사업자의 고객 이탈이 불가피하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현재 통신 시장에서 불법 보조금을 많이 받아가는 국민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단통법 전면 폐지보다 분리공시제(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판매 지원금을 각각 따로 고지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 제도를 보완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