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 성지' 대구 안지랑골목서 상표권 전쟁

입력
2024.01.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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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랑곱창골목 530m... 번영회 32곳 vs 상인회 1곳 갈등
"국비제작, 개인점유 불가" vs "상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양자 간 갈등, 지원사업 등에도 걸림돌

대구 10미(美)인 막창구이를 비롯해 전국의 '곱창성지'인 대구 안지랑곱창골목에서 상인들이 상표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22일 대구 남구와 상인 등에 따르면 안지랑시장입구~룸비니유치원 530m 구간의 곱창점포는 모두 35개로 이 중 32곳이 안지랑곱창골목상가번영회 소속이고, 1곳은 안지랑시장상인회 소속이다.

발단은 양손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는 돼지 캐릭터 아래 '안지랑 곱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상표다. 번영회에 따르면, 이 상표를 상인회가 10년 넘게 독점하고 대물림해 다른 상인들은 활용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골목 곱창 점포 대다수가 번영회 소속이고, 상표는 정부 예산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개인이 점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번영회 관계자는 "국비로 만든 상표를 개인이 독점해 대물림까지 하는 것은 곱창골목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이라면서 "전국적 곱창명소가 개인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안 된다"며 민형사상 대응을 예고했다.

상인회는 "번영회가 훼방을 놓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상인회 관계자는 "비영리단체인 상인회 명의로 등록할 수 없어 관계기관 등의 권유에 따라 개인으로 등록한 것"이라며 "당시 관련 사항을 모두 공지했음에도 뒤늦게 반발하는 것은 장사를 방해하려는 음해"라고 반박했다.

해당 상표는 지난 2011년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주최한 '안지랑시장 곱창골목 브랜드 대학생 공모전'에서 한 대학생이 출품한 것이다. 브랜드의 상표권은 당초 시장경영진흥원에 귀속됐다가 논의를 거쳐 상인회에 주어졌다. 다만 비영리단체인 상인회가 등록할 수 없어 공동사용 취지로 개인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이 로고를 상표로 출원했으나 특허청은 "공익상 특정인에게 독점시키는 게 부적합하다"는 등 이유로 등록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3년 4월 특허청은 입장을 바꿔 그림에 상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상표로 등록, 분쟁의 불씨가 됐다.

상인 간 갈등은 지원사업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2021년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이 5,000만 원을 들여 상권컨설팅 등을 벌인 '골목경제권조성사업 2단계 회복사업'을 시행했으나 상인 갈등 때문에 이후로는 사업을 구상하거나 발굴하는 게 어렵다.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 관계자는 "한 상권에 상인회 한 곳이 있는 것을 전제로 골목상권지원사업을 수행하는데, 안지랑골목에는 상인회와 번영회가 있고 갈등도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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