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기생충"들을 향한 일갈

입력
2024.01.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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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표트르 대제의 공직질서법


러시아 개혁군주 표트르 1세(1672~1725)는 1696년 단독 차르로 권력을 쥔 지 불과 2년 뒤 ‘수염세’를 부과했다. 귀족의 세습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젊은 군주의 상징적 선언이자, 수염을 천국의 입장권인 양 설교하던 정교회 종교 권력에 대한 단호한 부정이었다. 그에게 치렁치렁한 수염은 유럽 변방의 무력한 공국 러시아가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마주 서야 할 상대들, 즉 남방의 오스만튀르크와 부동항 발트해를 막고 선 스웨덴보다 먼저 꺾어야 할 적이자 서구화 근대화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그는 잔인한 전제군주였지만, 당시 기준 서구식 역법인 율리우스력을 도입(1700)했고 스웨덴과의 북방전쟁(1700~21)에서 승리했고 숱한 희생을 치르며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정교회 총 대주교 직위를 없애는 대신 그 권력을 종교회의(Synod)에 넘겼고, 러시아 과학아카데미(1724)를 창설했다.

1722년 1월 24일(율리우스력) 선포한 ‘제국 공직질서에 관한 법률’은 그의 개혁의 절정이었다. 그는 모든 군대와 왕실 공직을 비롯한 시민 사회를 세습 신분과 재산에 상관없이 오직 능력과 업적으로 평가, 14개 계급과 263개 직종으로 구분함으로써 근대적 신분질서를 확립했다. 세습 특권을 박탈해 귀족 출신도 서민과 마찬가지로 최하등급 14등급부터 군복무를 시작해야 했고, 거꾸로 하층민도 실력으로 출세할 수 있게 했다. 물론 1계급(왕족)은 예외였고, 5계급 이상은 차르 자신의 심사를 통과하게 했다. 8계급 이상에 한해 세습 지위를 부여했고, 미혼 여성은 원칙적으로 아버지 계급보다 4계급 아래 지위를 누리게 했다. 그는 “무례한 기생충들이 아니라 (왕실과 국가에) 봉사하려는 이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선언을 그 법령에 명기했다.

이 신분 질서는 1917년 레닌 혁명으로 폐지될 때까지 약 200년간 일부 수정을 거치며 러시아 사회의 근간이 됐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