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소멸 위기에 정치권이 저출생 대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출산ㆍ육아 지원 제도를 이용하는 비율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 그룹 가운데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 어려운 환경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유급 출산휴가는 12.9주(90일)로,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포르투갈(6주)과 호주ㆍ멕시코(12주) 다음으로 짧았다. OECD 평균(18.5주)과는 한 달 반가량, 유럽연합(EU) 평균(21.1주)과는 두 달 가까이 차이 난다. 국제노동기구(ILO) 모성보호협약에선 출산휴가 기간을 최소 14주로 권고하고 있다.
짧은 출산휴가조차 마음껏 쓰기 어려웠다. 2021년 기준 출생아 100명당 유급 출산휴가 사용자 수는 26.1명으로, 자료가 확보된 17개국 중 멕시코(13명)에 이어서 두 번째로 적었다. 17개국 평균(68명)과 비교하면 38%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50명 미만인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 칠레(48.8명)뿐이었는데, OECD는 “낮은 여성 고용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육아휴직 이용률도 낮았다. 2021년 기준 출생아 100명당 유급 육아휴직 사용자는 48명으로, 일본(46.4명)과 꼴찌를 다퉜다. 원인으로 육아휴직 등에 인색한 기업문화와 낮은 소득대체율(기존 소득 대비 육아휴직 급여액 비율)이 지목된다. 한국은 2022년 소득대체율이 44.6%로,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OECD 27개국 가운데 17위였다. 비판이 이어지자 최근 국민의힘은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150만 원에서 210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내놨고, 더불어민주당은 부모 누구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자동으로 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 못지않게 제도를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7~10월 5인 이상 표본 사업체 5,038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일ㆍ가정 양립 실태조사’ 결과, 육아휴직 제도를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밝힌 사업체는 52.5%에 그쳤다. ‘필요한 사람 중 일부만 사용 가능하다’는 답변은 27.1%였고,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도 20.4%나 됐다.
기업 규모별 격차도 컸다.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응답은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95.1%에 달했지만, 10~29인 사업체에선 50.8%, 5~9인 사업체에선 47.8%로 뚝 떨어졌다. 제도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로는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 42.6%, ‘직장 분위기와 문화’ 24.2%, ‘대체인력 구하기 어려움’ 20.4%, ‘추가인력 인건비 부담’ 12.8% 등이 꼽혔다. 인력이 적어 휴직자로 인한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정성미 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육아휴직이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