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장관을 혼낼 때가 있다. 그렇다고 언론에 바로 알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격이다. 흔치 않은 충격요법을 윤석열 대통령이 꺼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크게 질책했다며 발언을 공개했다. 전방부대를 격려하던 연말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고유 영토인 독도가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 분쟁지역으로 실렸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오류로 치부하기엔 심각한 문제다. 본질은 ‘내가 맞다’는 군의 오만함이다. 교재 편찬에 현역 장교들을 투입하며 전례 없이 민간 전문가를 배제했다. 외부 시선과 사회적 합의를 살필 필요가 없었다. 치열한 토론과정을 거쳤을 리 만무하다. 민감 이슈인 독도를 안이하게 다룰 정도로 둔감했다. 보편적 기준을 무시하고 국방부 논리를 앞세우다 사고를 쳤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방통행의 결과다. 윤 대통령은 격노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도 닮았다. 소통에 인색한 건 국방부와 매한가지다. 쓴소리를 경청할 기자회견을 해가 두 번 바뀌도록 꺼리고 있다. 이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록을 깰 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비난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2년간 열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김건희 여사와 국정기조를 향한 의혹과 불만이 쌓여간다. 대통령의 판단이 옳다면 반대 여론을 설득하면 된다. 아니라면 본인부터 고쳐가는 게 순리다. 어느 쪽도 아닌 상태로 버티다 불통의 늪에 빠졌다. 민생을 외치지만 민심에 개의치 않다 보니 아직 임기 초반인데도 정권 심판론이 압도적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도 존중받을 수 있다. 궁금한 건 대통령 생각이지 손수 끓인 김치찌개 맛이 아니다.
급기야 구원투수로 나선 한동훈 비대위원장마저 내치려 한다. 명품백이 역린도 아닐 텐데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선거를 당에 맡긴다면서 개입 논란을 자초했다. ‘사과하면 들개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며 방어막을 쳤다. 민심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호랑이와 같다. 들개를 경계하면서 맹수를 하찮게 여기다가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세 차례 몸을 낮췄다. 하지만 시늉에 그쳐 위기를 기회로 살리지 못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직후 “국민은 늘 옳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자기반성이 불분명한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예산안 처리를 위해 국회를 찾아 “부탁드린다”고 연신 야당 의원들의 손을 잡았는데도 여야 대립은 도리어 격화됐다. 부산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자 대국민 담화를 자청했지만 진솔한 사과보다 “예측이 빗나갔다”는 무책임한 해명만 기억에 남았다.
앞서 혼쭐난 국방부는 상부 지시에 맞춰 방향을 틀었다. 다음은 윤 대통령 차례다. 통수권자를 꾸짖으며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아서 국민의 요구에 얼마나 부응하는지에 달렸다.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카메라를 향해 수십 분씩 자화자찬을 쏟아내던 열정이면 족하다. 듣고 싶은 말이 많은데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정권의 명운을 가를 총선이 코앞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누구나 수긍할 명분이 필요하다. 볼썽사나운 권력 다툼으로 시간 끌 때가 아니다. 고집만 피운다면 남은 3년 임기 동안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질책과 호통 대신 자책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이제는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