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한때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불렸다. 할리우드처럼 공장에서 상품 만들듯이 영화를 찍어냈다. 철저한 분업화로 무협영화와 코미디영화 등 여러 장르 영화를 대형 스튜디오에서 양산했다. 영화사 쇼브러더스가 산업화를 이끌었다. 인구 수백만 명에 불과했던 내수시장의 협소함은 해외시장 공략을 통해 극복했다. 광둥어 대신 베이징어로 영화를 주로 만들며 세계 곳곳 중국 이민자들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았다. 1970~80년대 아시아 시장을 호령했다.
홍콩 영화계는 국경 밖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쿵후 영화의 전설이 된 리샤오룽(李小龍)은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할리우드에서 겉돌던 그를 스타로 키워 세계 시장으로 내보낸 건 홍콩 영화계였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아시아계 최초로 수상한 량쯔충(楊紫瓊)은 홍콩에서 연기 이력을 시작했다. 그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재능 있는 한국 감독과 배우들도 한때 홍콩에서 활동했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의 정창화 감독은 홍콩을 발판으로 세계적 감독이 됐다. 배우 윤일봉과 하명중 등은 홍콩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밖에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홍콩 유명 감독 왕자웨이(王家衛)와 호흡을 맞추며 세계적인 촬영감독으로 발돋움한 크리스토퍼 도일은 호주인이다.
홍콩 영화계는 개방성을 할리우드로부터 배웠다. 할리우드는 초창기부터 유럽 인재들을 적극 수혈했다. 스웨덴과 독일에서 각각 연기 활동을 하다 할리우드로 건너간 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대표적이다. 할리우드는 홍콩 영화가 황금기를 누릴 때 홍콩 영화인들을 끌어들여 시장 확대를 꾀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다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주변부를 맴돌던 흑인과 아시아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품고 있다. 인력 다양성에만 치중하지 않고 내용의 다양성까지 도모하고 있다. 2020년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 등극, 2021년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지난해 아시아계를 소재로 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오스카 7개 부문 석권은 할리우드의 세계시장 확대와 무관치 않다.
인터넷으로 각 나라가 20세기보다 더 긴밀해지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영향이 크긴 하나 상업적 의도를 배제할 수는 없다. 이성진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 등 한국계가 뭉쳐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비프)’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수상한 점도 이런 관점에서 되짚어 볼 만하다. ‘성난 사람들’의 성취를 보면서 ‘K유전자’의 우수성을 논하기보다 할리우드의 포용성과 상업적 계산을 살피는 게 우선이다.
한국 영상산업은 어떨까. 폐쇄성이 강한 편이다. 나라 밖 인재 영입에 인색하다. 할리우드에서 활약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재미동포들과도 협업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스티븐 연과 다니엘 헤니 같은 유명 배우 정도다.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나 콘텐츠에 이를 반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필리핀 배우 크리스천 라가힐, 예능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인 콩고민주공화국인 조나단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다문화를 적극 품으려 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풍토와 관련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꼭 세계적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