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지독한 암연(暗然)이다. 가늠키 어려울 만큼 세계가 흐리고 어둡다. 공포의 원천은 불가측성이다. 전쟁, 경제, 기후환경 등 위험요인이 예측관리 수준을 크게 넘었다. 수 세대의 경험이 쓸모없어진 상황에서 필요한 건 새롭고 정교한 생존기술이다. 정치가 그 중심이다. 올해 각국의 정치교체, 개혁의 결과가 어느 때보다 해당 국가의 미래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것이다.
새해 벽두 짧은 글에 한가한 공론을 늘어놓은 이유는 한국정치를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우리 정치가 절망적인 건 거꾸로 예측 가능한 확실성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를 전혀 기대할 수 없어서다. 누가 더 싫은가가 기준이었던 대선 선택양상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총선까지 왔다. 지난 2년 여야 양대 진영 어디도 매력조건을 만들지 못했다. 선택이 괴로운 정치적 혐오층, 부유(浮遊)층만 잔뜩 늘려 놓았다.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안 됐지만 민주당은 거론 대상이 못된다. 대선 이후 이재명 대표 보호와 그의 권력의지를 떠받친 역할 외엔 기억할 만한 행적이 없다. 생존에 급급한 이 대표는 그사이 유능한 행정가 이미지를 포함한 정치적 자산을 거의 잃고 적대적 공생에 기대는 상황이 됐다. 이 대표는 더는 자생 가능한 독립변수가 아니다. 윤 대통령이 못하면 살고, 잘하면 죽는 종속변수다. 좋든 싫든 우리 정치의 미래를 윤 대통령에게라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윤 대통령의 문제는 뻔한 정답을 피하는 것이다. 쉽고 간단한 문제에도 도무지 정답을 쓰지 못하는 학생이라면 둘 중 하나다. 정말 모르는 학습지진아든지, 틀린 제 답만 고집하는 저항성 독불장군이든지. 어느 쪽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에겐 권력행사가 정치였다. 정부 인사, 당직 개편, 참사 수습, 특히 김건희 여사 관리문제에서 누구나 아는 정답을 줄곧 피해 갔다. 공정과 상식을 몇몇에라도 적용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것도 한계에 왔다. 국가장래나 민생과 무관한 대통령 부인의 처신 문제가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현안이 된 현실은 기막히다. 막중한 국정 대신 왜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느냐고 한다면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중정서를 직접 건드리는 효과가 크지만 사실은 윤 대통령에 대한 불만–불공정, 비상식, 책임방기, 불통 같은-이 모두 응축된 상징 사안이 된 때문이다. 그래서 다행일 수도 있다. 가중치 높아진 이 문제만 제대로 풀면 전체 성적을 크게 올릴 수 있다는 뜻이므로.
대선 전 연말 윤 후보는 부인의 허위이력 등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 같지도 않다는 혹평으로 당장 여론에 크게 반영되진 않았으나 어쨌든 이 문제는 대선이슈에서 지워졌다. 간발의 승부에서 부인 이슈가 계속 갔다면 결과는 몰랐을 일이다. 더욱이 그때는 지엽적 문제였다.
우회로로 여겼을 한동훈 효과도 차츰 빛이 바래가고 있다. 김 여사 문제 빼고 언저리만 도는 인상 때문이다. 과감히 대들라는 제언도 많지만 무리한 주문이다. 3년 이상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밟고 앞날을 도모하긴 어렵다. 이 문제는 그래서 온전히 윤 대통령 소관이다. 한동훈도 살고, 총선도 성공하고, 그래서 정권도 살리는 방책이 뭔지는 분명하다. 더불어 시대적 책임의식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존중하는 지도자로 남으려면.
윤 대통령은 이번만큼은 서둘러 정답을 쓰기 바란다. 특검 수용하고 사과하고 제도적 재발방지책을 복원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머뭇거릴수록 해법은 엉키고 우리 정치와 국가미래는 퇴행과 답보의 악순환에 갇힌다. 예측 가능한 뻔한 앞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