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병사 순직 관련 수사 외압 의혹을 들여다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김계환(56·해사 44기) 해병대사령관(중장)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현직 장성급 장교(장군)가 피의자 신분으로 공수처 수사선상에 오른 건 처음이다.
공수처는 18일 “진행 중인 사건(국방부와 군이 해병대 수사단장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 수사와 관련, 국방부와 해병대 관계자를 대상으로 수사상 필요한 자료를 확보했거나 확보 중에 있다”고 밝혔다.
사정당국 및 군 소식통 등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4부(부장 이대환)는 전날에 이어 이날까지 이틀에 걸쳐 경기 화성시 해병대사령부 내 사령관·부사령관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팀은 16일부터 전날까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사무실 및 자택,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의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공수처는 압수한 증거 등을 검토한 뒤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의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해병대 수사단에 가해진 외압 의혹을 밝히는 수사다. 김 사령관은 초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문제가 없고, 오히려 폭넓게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방부가 이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박 전 단장이 자신의 지시를 어겼다고 주장하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런 입장 전환 때문에 외압 의혹을 규명할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군 사법제도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유 관리관 등은 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채 상병 사망 경위를 수사하던 박 전 단장이 지난해 8월 2일 소속 부대장이었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등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는데, 유 관리관 등이 개입했고 같은 날 군검찰이 사건 서류 일체를 회수하고 박 전 단장을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는 내용이다. 박 전 단장 측은 이를 부당한 외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방부는 박 전 단장이 군검찰의 이첩 대기 명령을 어겼다는 취지로 주장해왔다.
김 사령관은 다음달 1일로 예정된 박 전 단장의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단장은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어기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혐의 등(항명 및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공수처가 현직 장성을 상대로 처음 강제수사에 착수하기는 했지만, 조만간 공수처 지휘부의 공백 상태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 수사가 꾸준히 힘을 받을 수 있을까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20일자로 퇴임하고 여운국 차장의 임기도 이달 말 종료된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급박한 사정이 없는 상황에서 책임자가 바뀌기 직전 새롭게 강제수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며 공수처의 해병대 강제수사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