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는 26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회의를 갖고 정치 보도를 평가했다. 뉴스이용자위원들은 한국일보가 비교적 정파적 편향성이 덜하고 중도적이라면서도 ‘적극적 균형’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회의에는 최영재 위원장을 비롯해 외부 위원 7명이 참석했고 박수진 위원은 재판 일정으로 서면 의견을 보냈다. 한국일보에서는 사내 위원인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송용창 뉴스룸국 뉴스1부문장, 김회경 논설위원이 함께했다.
최 위원장은 "한국 신문의 정치 보도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파적 편향 보도 △싸움·갈등 중심 보도와 정책 보도의 실종 △선정적 보도 △대통령 '말씀'을 전하고 '심기'를 살피는 제왕적 대통령 보도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한국일보는 비교적 중립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는 게 다수 위원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제와 제목, 행간에서 한쪽을 편드는 듯한 기울어진 보도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표적 사례가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담은 ''한동훈, 與 지지율 올릴 것' 41%… '이재명, 2선 퇴진해야' 57%'(1월 1일 자) 기사였다. 조영준 위원은 "각각 다른 이슈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해 뭘 비교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고 최 위원장은 "한쪽의 긍정성, 다른 쪽의 부정성을 병립해 편집한 것은 불공정 편파 보도의 의심을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한 '한동훈, PK서 이재명 12%p 앞서... 피습 동정론 없었다'(1월 13일 자) 기사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 효과를 감안하지 않은, 편파 보도 소지가 있는 기사로 꼽혔다. ‘한동훈 떴지만… 여전한 정부 견제론‘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조선일보가 더 합리적이라고 최 위원장은 덧붙였다.
한 위원장 관련 기사가 월등히 많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최원석 위원이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분석서비스를 활용해 지난해 12월 12일(총선 D-120일)부터 올해 1월 24일까지 정치 기사 제목의 어휘 빈도수를 집계한 결과 '한동훈' 언급 기사는 102건으로 '이재명'(47건) '이준석'(40건) 언급 기사의 두 배가 넘었다. 이 기사들이 비대위 활동이나 정책이 아니라 인물에 집중한 기사였다는 점도 문제였다. 송 부문장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선거체제에 일찍 돌입하면서 비대위 구성 등 여당 관련 뉴스거리가 많았다"고 해명했다.
최 위원장은 "정파성을 소비하는 언론 시장에서 한국일보가 '무미건조' '회색' 이미지로 입지가 줄어드는 문제를 극복하려면 '적극적 균형 보도'가 필요하다"며 "한국일보의 장점인 기자들 다양성을 살리고, 정치 사회 내 다양한 이념적 관점을 적극 드러내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는 전략을 마련해 보라"고 제안했다.
정쟁 에피소드 중심으로만 보도되고 정책 기사가 너무 부족하다는 정치 보도의 문제점 또한 다수 의원들이 제기했다. 드문 정책 기사마저 ‘선거용’으로 폄훼됐다. 박경미 위원은 '여도 야도 '민생 포장' 총선용 정책 쏟아낸다'(1월 18일 자) 기사에 대해 "제목부터 '민생 포장'이라 붙였는데 굳이 이렇게 깎아내릴 필요가 있냐"며 “여당은 금융투자세 등 감세, 야당은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가격 안정 관련 법 등을 들고 나와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컸는데 이를 분석하지 않고 민생 포장으로 치부하는 것은 냉소만 불러올까 우려된다”고 짚었다. 최 위원은 앞의 빅데이터 분석에서 상위 50위 안에 정책·공약 관련 어휘가 없었던 점, 여야가 민생의제 해결을 위해 구성한 ‘2+2 협의체'에 대한 상세한 기사가 없었던 점을 들어 "정책 보도가 인기가 없다고 다루지 않으면 독자들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그는 "협의체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등 시급한 사안을 다루기로 해놓고 소득 없이 중단되는 것에 대해 언론이 날카롭게 비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의 시각보다 유권자의 시각을 중시하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박경미 위원은 세대교체론, 인물영입 보도와 관련해 "정당의 인재 영입의 한계를 지적하고, 오히려 현역의원 대체 같은 원칙이 유권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유권자를 대표하는 새로운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위원도 "공천 관련 보도가 인물 중심의 화제 기사가 주류인데, 정당의 공천 철학과 기준을 심층 해설해야 시민들이 민주적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의정치가 궁극적으로 시민을 대변하는 게 고유의 역할이라면 언론은 어떻게든 민의를 가시적 형태로 보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정치 보도의 원칙을 제시했다.
개딸 논쟁, 정치인 피습 등을 계기로 팬덤 정치를 다룬 보도도 마찬가지다. 정치권 내 사건으로 사건 자체를 전하는 데 머물 게 아니라, 사회 현상으로 시각을 넓혀 무엇이 정치 팬덤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끄는지 원인 분석과 대안 모색을 담은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경미 위원은 "정치 팬덤을 정치적 병리현상과 연결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고, 이를 손 놓고 있으면 훨씬 더 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가 도널드 트럼프 열성 지지자 수십 명을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방식으로 취재해 보기를 제안했다.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는 기사쓰기 관행은 개선할 점으로 꼽혔다. 박수진 위원은 '김건희 명품백 의혹에 친윤 "사과없다"... 한동훈 "할일 하겠다"'(1월 21일) 기사 등에 ‘심기’ ‘황태자’ ‘적통’ ‘진노’ ‘지근거리’ 등 궁중용어가 쓰인 것을 지적하고 "이런 비유에 전제되는 ‘대통령=왕’의 논리가 은연중에 독자들 의식에 영향줄 수 있다"며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정치 보도의 고질이라 할 직접 인용 제목도 여전히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정치인 발언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기보다 기자가 해석하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동훈 "제 임기 총선 이후까지"… "친윤 공세 못 버틸 것”’(1월 22일)처럼 취재원의 발언을 잘라서 전체 취지와 달리 인용하는 것은 왜곡 보도의 위험이 있고, 혐오 정치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박수진 위원은 당부했다.
총선을 앞두고 선보인 다양한 기획기사에 대해선 기획 의도는 매우 좋았으나 완성도가 떨어져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신년 여론조사의 핵심 메시지로 ''여야 동시 심판론' 22%가 총선 가른다'(1월 1일 자)는 제목을 뽑고 동시심판론자가 총선의 캐스팅보터라고 강조했는데, 동시심판론자에 대한 분석과 해석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었다. 장한익 위원은 “언론사 여론조사들이 ‘정권심판 vs 야당심판’ 구도를 담은 가운데 한국일보는 동시심판론자를 다뤘는데 이들의 특성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아쉬웠다. 질문 구성에 따라 동시심판 응답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동시심판 응답자 22%보다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않은 35%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조 위원), “역대 총선보다 부동층이 훨씬 강고해진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박경미 위원) 등 반론이 이어졌다. “신년 여론조사 기사 7편에 취재원 한 명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는데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게 좋겠다”(박찬희 위원), “설문 응답 수치만 보도할 게 아니라 계층·포커스별로 심층 분석한 내용을 함께 다루면 좋겠다”(장한익 위원)는 제언도 있었다.
가짜뉴스 이슈를 다룬 '팩트가 증오를 이긴다'(1월 2~4일 자) 기획도 기획 자체와 그래픽은 좋았으나 내용이 미국·유럽 사례 중심으로 채워진 데다 대안 제시가 불충분한 점은 아쉬움으로 꼽혔다. 박경미 위원은 "왜 한국에서 언론이 신뢰를 잃었는가를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기획이 돼야 했다. 결국 외국의 플랫폼 제재를 해법처럼 제시했는데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 돼야 했다"고 말했다. 박찬희 위원도 "언론의 역할과 자성을 강조한 것은 학계가 많이 언급한 내용이어서 기시감이 들었다"고 했다.
신생 정당의 비용 문제를 다룬 기획 '창당의 정치학'(1월 15일 자)도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모두 받았다. 장한익 위원은 "이번 총선처럼 제3지대가 난립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창당 과정을 다룰 만했고 제3당에 포커스를 맞춰 꾸준히 다뤄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박경미 위원은 "기사가 전반적으로 신당은 비용 지출이 거의 없지만 기성 정당들은 많은 돈을 쓰는 현실을 대비해 보여줬고 제목에도 '가성비 높은'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정치는 가성비를 따질 수 없는 영역이라고 본다. 정치가 효율성을 좇으면서 오늘날 정치가 국회와 현역 의원 중심으로 전개되는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면에서 가성비는 조심해야 할 관점"이라고 말했다.
총선 보도에 대한 참고할 만한 제안들도 있었다. 장민제 위원은 젊은 세대를 겨냥한 공약 큐레이션을 꼽았다. 그는 "청년들은 자기 선택의 근거가 될 내용에 관심이 많아 이를 정리해주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면서 2022년 대선 때 뉴스레터 뉴닉이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일자리, 주거, 성평등, 노동 등 주제별 공약을 큐레이션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박경미 위원은 바람직한 당정 관계를 다뤄보기를 제안했다. 그는 "통시적으로 당정 역학 관계의 변화를 살펴보거나, 해외 정부의 성공 사례를 비교해 한국 정치의 특징을 조망해 보라"고 했다.
국외 정치 보도도 많이 다뤄달라는 주문이었다. 올해는 미국 대선을 포함해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열리는 '정치의 해'인데, 타사 대비 관련 보도가 적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 위원은 "기업들은 국내 선거보다 오히려 미국 대선 결과에 관심이 높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탄소중립 정책의 축소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법안 폐지가 예고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우려가 매우 크다"면서 국외 정치 흐름 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웹사이트에서 총선 기사 큐레이션을 개선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장한익 위원은 "한국일보 홈페이지에 총선 기사들을 '#2024총선'으로 묶어 놓았는데 일반 정치기사를 모두 모아놓은 수준이고 검색하기도 어렵다"며 "각 정당 정책 등 주제별 카테고리를 만들고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메뉴도 제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의 좋은 기사로는 '새마을금고의 배신'(1월 22~25일 자) 기획 보도가 꼽혔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세 사기 등 부동산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하면서 깊이 있는 기사라는 평가다. 박찬희 위원은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 투표 구조나 정치권 비호 등 문제를 다각적이고 구조적으로 파헤친 좋은 탐사 보도"라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많이 공유된 '상속 전쟁' 기획의 인터랙티브 콘텐츠 '상속 게임: 쩐의 전쟁'과 유튜브 숏폼 콘텐츠 '30만 원 말고 1만 원에 산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상속과 관련된 경제적 문제에 대해 시뮬레이션 게임 형식으로 실감 나게 보여준 점과 저렴한 케이크를 어떻게 구매할까 독자에게 실질적 방법을 제시한 점이 좋았다"(장민제 위원)고 호평받았다. '"멸균팩 탓 종이팩 재활용률 35%→13%로 뚝… 전용 수거함 보급 확대 급하다'(1월 17일 자)도 좋은 정보를 전달한 기사(조 위원)로 언급됐다.
반면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의 동영상이 날것 그대로 노출된 점은 문제로 지적됐다. 박찬희 위원은 "피습 직후 기사에 CCTV 영상이 붙어 있었는데 모자이크나 화면 멈춤이 전혀 없었다. 한 시간쯤 후에 보니 영상이 지워졌는데 미리 내부 합의가 있어야 했다"고 했다. 박경미 위원은 '與 “정치혼란 막을 거부권” vs 野 “제2부속실, 특검 등가물 아냐”'(1월 6일 자) 기사에서 국회의 재의결 요건을 보다 정확히 써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사에서 '출석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그래서 최대 199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면 통과되므로 최소 101명이면 재의결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시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