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대로면 러시아에 유리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같은 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등 우방국의 군사·경제 지원이 더뎌진 채 전장의 교착 상황이 이어지면 러시아가 2022년 2월 침공으로 차지한 우크라이나 영토 17.5%를 그대로 둔 채 전쟁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게 양쪽 모두의 진단이기 때문이다.
영국 로이터통신, 미국 CNN방송 등을 종합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특별연사로 나서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2022년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점을 상기했다. 이어 그는 "동결된 전쟁에는 결국 다시 불이 붙기 마련"이라며 "전쟁이 얼어붙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쟁이 지금 멈춘다면) 포식자(푸틴 대통령)가 우크라이나 국경 너머 유럽으로까지 영토를 확장하려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정적 무기 공급 등이 필요하다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현장에서 "지난달 헝가리 반대로 합의가 무산된 우크라이나 지원 기금 500억 유로(약 73조 원)를 지급할 방법을 찾겠다"고 화답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격랑에 빠진 만큼 다보스포럼 핵심 주제는 단연 '안보 위기'였다.
젤렌스키 대통령 발언 후 푸틴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전장의 주도권은 러시아에 있으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얻은 군사 이익을 빼앗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크라이나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를 향해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 등을 전제로 한 평화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서는 '불가능한 논리'라며 외면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도 접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