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공천룰을 공개하며 '중진 물갈이'에 시동을 걸었다. 동시에 '자객 공천' 승부수로 더불어민주당과의 결전을 별렀다. 현역의원은 비우고, 탈환을 노리는 지역구를 새 인사로 채우면서 '한동훈식 공천'의 색깔이 드러나고 있다.
공천룰의 '다선의원 조정지수'가 최대 관심사다. 동일 지역구에서 3차례 이상 당선된 현역의원을 대상으로 한다. 경선에서 얻은 득표율의 15%를 감산한다. 이에 해당하는 국민의힘 3선 이상 의원은 24명 안팎이다.
가령, 3선 의원(A)과 34세 이하 정치 신인(B)이 맞붙어 각각 55%, 45% 득표율을 얻은 경우 A는 15%를 뺀 46.75%가 최종 득표율이다. 반면 B는 청년·신인 20% 가산 조항을 적용받아 54%로 득표율이 오른다. 승패가 뒤바뀌는 셈이다. 특히 현역의원 권역별 평가에서 하위 30%에 포함될 경우에는 20%를 추가로 감산한다. 이에 해당하는 중진의원은 사실상 경선을 통과하기 어렵다. 이 조항이 중진 물갈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17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중진들이 아직은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않고 있다. 이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4선 이상 의원 10여 명이 참석한 오찬 간담회에서도 관련한 이의 제기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물갈이 명목으로 비윤석열계 중진들을 내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은 상당하다. 한 영남권 중진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공관위 재량이 많이 반영될 수 있는 당 기여도 평가 점수 등을 조정해서라도 눈 밖에 난 중진은 기어코 떨어뜨릴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진박 감별사'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선 안철수 의원은 이날 BBS라디오에서 “실제로 경선에 들어갈 때 여러 가지 핑계를 대서 경쟁력 있는 사람을 컷오프(탈락)시킨 뒤 (정권의)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경쟁력이 약한 후보를 경선시킨 것을 이미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외부 인사를 주요 지역구에 내보내는 채움 작업도 한창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비대위원인 김경율 회계사를 마포을에 투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곳 현역의원인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3선)을 겨냥한 자객 공천이다.
한 위원장은 “'이번에도 어차피 정청래가 될 거다'라고 자조 섞인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다. 왜냐하면 이번 4월 선거에서 우리 국민의힘 후보로 김경율이 나서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진보 진영 인사로 분류됐던 김 회계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사태를 계기로 보수 진영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전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공천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다만 공천 심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낙하산'을 내리꽂는 모양새로 흐르자 오랜 기간 해당 지역구에서 공들여온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김성동 마포을 당협위원장은 본보 통화에서 “덕담을 나누는 신년인사회 자리에서 10년 이상 험지를 지켜온 당협위원장의 등에 칼을 꽂듯이 모욕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천 계양을의 윤형선 당협위원장도 페이스북에 “계양구민들 사이에는 연고 없는 낙하산 공천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논란이 일자 한 위원장은 "누구를 거기에다가 보냈다고 결정했다는 취지는 아니다"라며 "양지로 갈 수 있는 김 회계사 같은 분이 자처해서 상징성 있게 싸워보겠다고 하는 것이 당에 큰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서 그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