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질러"... 여야, 민생으로 포장한 총선용 정책 경쟁

입력
2024.01.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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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추계 없이 농산물 매입 추진
간병인 지원 재원 방안 역부족 
특별법 제정해 예타 면제 꼼수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쏟아내는 민생 정책이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국민 부담 완화를 내걸었지만 실현 가능성과 재원 마련, 부작용에 대한 논의 없이 일단 지르고 보는 식이어서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했거나, 정부‧여당이 발표한 정책에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진다. 앞서 15일 국회 과반을 차지한 야당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을 단독 통과시켰다.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해 4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보다 의무매입 기준을 완화했으나,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사들인다는 틀은 변함이 없다. 농안법은 배추‧무 등 주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5년 평균에 못 미치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하는 가격안정제 도입이 골자다.

앞서 농촌경제연구원은 정부가 쌀 초과생산량을 의무매입하면 생산량이 소비를 웃돌면서 2030년까지 연평균 1조443억 원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주요 농산물 가격안정비용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재원이 들 수밖에 없지만 야당은 별다른 비용 추계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가격안정제는 가격 보장 농산물로 생산이 쏠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실행 의지가 있었다면 부작용‧필요 재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한 뒤 정부‧여당을 먼저 설득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총선을 앞두고 농민 표심을 겨냥한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평가다.


정부‧여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야당이 양곡법 개정안을 처리한 다음 날(16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기업 부담을 덜어드리려 한다”며 부담금 91개를 수술대에 올렸다. 부담금은 공익사업과 연계해 의무적으로 걷는 돈이다. 올해 부담금 징수 규모는 24조6,000억 원이다.

그러나 부담금 개편 방안을 연내 마련하기로 한 기재부 내부에서조차 “부담금 폐지‧통폐합은 법 개정 사안이라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문화예술 진흥처럼 명확한 목적을 가진 부담금이 많고, 폐지 시 세금으로 필요비용을 메워야 하는 점도 걸림돌이다.

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간병비를 건강보험 등에서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재원 마련 방안이 발목을 잡는다. 연간 최대 15조 원 안팎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작 건강보험 재정은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선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폐지 방침을 밝힌 금융투자소득세도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해 실행 가능성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금투세가 폐지되면 연간 1조 원 안팎의 세수 증대 효과가 사라진다.

최대 11조 원이 투입되는 달빛철도와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처럼 여야의 이해가 맞아 ‘꼼수’ 추진하는 지역 개발사업도 적지 않다. 대구경북 신공항 사업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다. 달빛철도 사업은 261명의 여야 의원이 특별법을 발의한 상태다. 해당 사업은 사전타당성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비율(0.483)이 기준치(1)의 절반을 밑돌았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고된 정책이 갑자기 바뀌거나, 경제 효과가 제한적인 정책들이 추진되면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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