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동수제’에 대해 쓴 지난 칼럼에는 유독 ‘그런 주장할 거면 군대부터 먼저 가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러고 보니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를 위헌으로 판결한 이후 성차별 현실과 성평등 대안을 입에 올리는 순간 ‘군대부터 다녀오라’는 반응을 마주해 온 세월도 10여 년을 훌쩍 넘었다.
작년 10월, 헌법재판소는 현재 징병제도를 합헌으로 판결했다. 이는 2010년과 2014년에 이은 세 번째 결정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남성들은 현대의 전쟁은 건강한 남성 신체를 필요로 했던 전통적 전쟁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신체적 조건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점에 기반해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남성의 신체가 전투 수행에 더 적합하며 여성은 월경, 임신, 출산을 하기에 병력자원으로 투입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점을 들어 현재 징병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나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남성들과 헌법재판소가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주장은 동일한 가정을 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가정은 바로 ‘남성’이 기준이라는 점이다.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그와 같다(여성 징병을 주장하는 이들)고 보거나 그와 다르다(헌법재판소)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와 경험은 기준이 되지 않는다. 군대와 관련해 여성 신체와 경험을 기준으로 삼았더라면 군대 내 만연한 성폭력의 해결이나 군인의 임신과 출산권 보장이 공론화되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군대 내 성폭력은 죽음으로 이를 고발한 피해자들이 무색하게 무마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임신과 출산은 군대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겨진다. 여성이 군대에 가야 한다고 보든, 가지 않아야 한다고 보든, 그 군대는 남성 신체를 디폴트값으로 한 곳이다.
두 번째 가정은 모든 남성이 동등하게 징병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회학자 강인화는 2019년 '법과 사회'에 발표한 ‘1950년대 징병제와 한국전쟁의 ‘전후(戰後)처리’: 병역 부담의 공정성과 병역법 개정 논의(1950-1957)‘라는 논문에서 한국에서 보편적 징병제가 자리 잡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이며, 전쟁 와중에도 대학생은 징집을 연기할 수 있었고 1957년 병역법 개정에서도 복무기간을 더 짧게 규정해 논란이 되었음을 규명한 바 있다. 남자 대학생을 마치 전근대 사회에서의 예비 양반과 같은 특권적 엘리트 계층으로 간주한 인식 탓이다.
한편 1960년대 군사 정권은 병역기피자와 미필자를 최우선 정리 대상으로 공포해 1950년대 병역이행자들의 불만을 잠재웠고 나아가 군가산점제를 도입해 이들의 노동시장 우선권을 보장했다. 이 또한 강인화의 노고로 2021년 알려진 사실이다. (논문 ‘병역자격을 통한 시민자격의 형성: 1960년대 병역미필과 축출과 구제‘, '사회와 역사' 131집.) ‘군필자’를 최우선적으로 고용하고 가족임금을 지급하여 생계부양자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히 한국형 근대 가부장적 국가-노동-가족 삼위일체의 완성이라 할 만했다. 이렇게 되자 군면제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로부터의 배제가 되었다.
2011년까지 현역 입대가 아닌 4급 보충역 판정의 이유였던 무정자증과 발기부전은 전투 수행 가능한 남성 신체와 병역 의무 이행은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대체 정자와 발기가 전투 수행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현역입대는 전투를 할 수 있는 신체 능력이 아니라 여성 신체를 대상으로 한 성행위와 임신 능력이 있는 남성을 가려내는 것이었고 ‘군필’은 이런 남성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해 가장이라는 지위를 선사하는 명분이었다.
그러니 군대를 다녀와야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 여겨졌고, 그렇지 못한 남성들은 남성 간 위계질서에서 아래로 밀려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충역이나 면제자에 대한 (유머를 가장한) 비하가 일상적이었던 이유다.
여성이 국방의 의무 나아가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여성과 국가의 관계가 남성과 국가가 맺는 관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은 군복무를 통해 국가와 바로 연결된다. 그러나 여성은 국가와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 군복무의 숨겨진,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되는 대상이다. 어머니, 애인, 여자 친구, 성매매 여성, 걸그룹의 일원인 여성들은 남성 군인을 먹이고, 보살피고, 섹스를 하고, 위문함으로써 국가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는 공적 헌신이 아니라 사적 관계로 여겨질 뿐이다.
이름하여 ‘산업역군’ 즉 군인이자 노동자인 남성과 그를 ‘위안’하며 돌보는 여성이라는 한국형 젠더상은 1980년대 말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민주화와 탈냉전의 흐름 그리고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이 여성들을 노동자로 호명하면서부터였다. 직장에서의 ‘군필’ 요구는 군대를 가지 못한 여성들과 장애인들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었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은 징병제와 노동시장을 연결시킨 냉전 시대 군사주의적 발상이 더 이상은 통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건이었다. 이 과정은 2000년대 초반 문승숙의 '군사화된 근대성'부터 최근 강인화의 ‘군가산점제는 어떻게 ‘젠더갈등’의 전선이 되었나?: 병역동원-보상체제의 형성과 동요‘(2023년 '한국여성학' 발표 논문)에 이르기까지 많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이미 상세히 규명한 바 있다.
이는 여성들뿐 아니라 장애인들의 요구이기도 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99년 위헌 판결을 이끌어낸 소송은 남성 장애인 3명과 여자 대학생 4명이 함께 제기했다. 군복무와 그에 대한 보상이 ‘정상적’ 남성의 구성을 위한 그 외 존재의 배제와 차별로 작동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이를 남성 대 여성 간 대결 구도로 보도함으로써 이후 온라인상 여성혐오 문화와 폭력의 번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즈음 IMF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처방이 함께 진행되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해고는 곧 남성 가장의 위기로 그려졌고 군인-노동자로서의 동질성을 지닌 남성 집단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취업, 호봉 산정, 승진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군복무가 가졌던 노동 시장에서의 절대적 우위가 약화되면서 남성들은 더 이상 군복무 중 형편없는 임금을 감내하지 않으려 했고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군면제는 다시 배제가 아닌 특권이 되었고 군대에 가지 않은 ‘신의 아들’에 대한 질타와 공격이 이어졌다. 여성에 대한 집단적 낙인과 공격은 말할 것도 없다.
칼럼을 쓰고 있는 오늘, 고(故)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아 2차 가해를 방치한 당시 대대장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예람 중사는 2021년 상사의 지인 개업식 술자리에 불려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해자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상급자와 동료들에게 수차례 알리고 절차에 따라 보고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끊임없는 회유와 2차 가해였다. 전출된 새 부대에서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아 취급을 당한 그녀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극단적인 사례일까? 초대 보훈처장을 지낸 피우진 전 중령은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사령관의 명령에 전투복을 입힌 여군을 보내 보직해임을 당한 경험을 토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 옛날 옛적 일만은 아님을 증명하는 여군들의 경험담은 많다. 한국 사회가 중요하게 들으려 하지 않는 ‘군대 이야기’다.
요즘 젊은 여성들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군대에 ‘기꺼이’ 가겠다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의 제일 큰 관심사는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대책이다. 여성이 ‘군인’으로 직접 국가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여성’으로서 당하는 폭력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이란 얘기다.
‘여성도 군대 가라’는 이들에게 묻는다. 여성을 진정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 징병을 주장하는가? 아니면 군필이 더 이상 노동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갖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 집단의 분열과 양극화를 봉합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을 끌어들이고 있는가? 전자라면 여성이 ‘동료 시민’으로서 누려할 당연한 권리, 예컨대 성폭력으로부터의 안전, 성별 임금 격차 완화와 유무급 노동 시간의 동등화, 동등한 정치적·경제적 대표성(이런 면에서 ‘남녀동수제’는 군대를 다녀와야 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성평등한 군대’를 위한 전제조건이다)을 함께 주장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남성들은 그간 여성들이 ‘독점’해온 돌봄노동 또한 나누어야 한다.
징병제는 남성을 디폴트값으로 하여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만들어 온 제도다. 이 제도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 간 차이도 폭력적으로 무시되었다. 기준을 그대로 두고 배제되었던 자들이 통합되는 것으로 제도적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성도 군대 가라’는 이들이 남성 신체라는 기준, 이에 의거한 경험과 남성성을 의문시하면서 ‘성평등한 징병제’에 대한 구체적 상상을 시작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