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교전국 관계’라고 선언하고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협박한 데 이어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전쟁 시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편입시키는 문제"를 북 헌법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할 것"도 강조했다.
북한이 상스러운 대남 용어들을 퍼붓는 건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나 ‘최고 존엄’이 직접 나서 말폭탄을 연거푸 쏟아낸 건 무게가 다르다. 김 위원장 지시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민족화해협의회 등 대남 기구들은 바로 폐지됐다.
무엇보다 남북한을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는 하나의 민족’ ‘특수한 관계’로 보지 않고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설정하려는 건 심상찮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그동안 남북관계의 기본 틀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운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까지 철거할 것을 지시, 조부와 부친의 유훈조차 버릴 가능성도 내비쳤다. 앞으로 새로운 남북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에 대한 전략과 대책, 사회적 지혜와 공감을 한 데 모아야 할 때다.
윤석열 대통령도 16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을 향해 “스스로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의 서해 포 사격과 고체연료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발사 등에 따라 불안감이 커진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대통령의 의지와 각오를 보여주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말폭탄과 도발에 매번 맞불을 놓는 식의 대응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철저하게 대비하면서 엄중하게 경고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핵 협상을 위해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려는 북한의 의도도 간파해 냉정한 분석과 신중한 판단, 절제된 언행으로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게 때론 상책일 수도 있다. 북한에 맞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하는 남북관계를 새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