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사변' 위협에 이어 대한민국을 '적대관계'로 규정하더니 '전쟁'으로 엄포 놓으며 무력도발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한미 양국의 압도적 응징태세를 감안하면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겨냥해 말을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건 자충수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한 데 이어 서해로 포를 쏘고 동해로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점에 비춰 북한의 으름장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관심은 북한이 내밀 다음 카드에 쏠려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첫 표적으로 꼽힌다. 국방부는 16일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위협 발언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NLL을 수호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행태를 비판하며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해 전후로 북한의 도발에는 일정한 패턴이 드러난다. 말로 협박하고, 무력시위에 나서면서, 수위를 하나씩 높여가는 이른바 '살라미식' 공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기점이었다. “대한민국 것들과는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통일’을 지워버리더니 “적대적인 두 국가,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남북관계를 규정했다.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는 엄포도 이때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주적’이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수많은 ‘말 폭탄’ 속에서도 언급하지 않던 표현이다. 8일 군수공장 현지지도에서 대한민국을 “우리의 주적”이라고 칭하더니 북한 주권을 위협하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맞춰 화력을 선보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대 공장 공개(5일), 서해 북방 도서 인근 포 사격 훈련(5~7일), 고체 연료 극초음속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14일)과 최선희 외무상 러시아 방문(14일)이 잇따랐다. 대남 위협이 허세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같은 북한의 행태에 전문가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로버트 칼린 미국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11일(현지시간)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했다. 6·25전쟁에 버금가는 전쟁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 만큼 서해 NLL 무력화 시도를 예상해볼 수 있다”며 “2010년 연평해전 같은 서해상 무력 충돌이나 백령도를 비롯해 눈엣가시 같은 접경지역의 섬을 향한 포격에 나설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외에 △금융·통신망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 △해상 국지도발 △최전방 지역 침투 도발도 북한의 도발 시나리오에 빠짐없이 언급되는 내용이다.
다만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무력통일을 위한 선제공격으로 위협하면서도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이라고 전제를 달아 방어적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며 “미국을 상대로 자신들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