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 하수관로 공사가 안전사고에 이어 그 대책과 공사방법 변경 등을 둘러싼 시공사와 감리사간 의견 충돌로 5개월째 지연되면서 시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공사 발주처이자 감독 기관인 천안시도 이렇다 할 중재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공사 재개가 불투명하다.
17일 천안시와 업계에 따르면 시 산하 맑은물사업본부(맑은물본부)는 최근 천안시 원성동 하수관로 정비공사 시공업체 H사에 ‘19일까지 부진공정 만회대책 수립(2차) 재촉구 지시’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 정비공사는 천안시 원성동(2단계) 하수관로 3,388m, 차집관로 6,100m를 교체·설치하는 사업이다. 맑은물본부는 지난해 2월 H사와 사업비 110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공사 기간은 2026년 1월까지이다.
착착 진행되던 사업이 중단된 것은 지난해 8월. H사가 정비공사 15구역 터파기 작업을 진행하던 16일과 21일, 두 차례 흙더미가 무너지면서 작업자 2명이 일시적으로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흙이 무너져 내린 사고는 이 2건 외에도 지난해 6월 한 차례 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나자 시공업체인 H사는 공사를 중단하고 안전 대책을 요구했다. H사 관계자는 “신속한 구조로 인명피해는 막았지만, 추가로 흙더미가 붕괴될 우려가 있어 공사를 중단했다”며 “감리사(D사)에도 해당 사실을 알리고, 안전한 공사를 위해 ‘비굴착 공법으로 설계 변경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감리사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감리사 관계자는 “시공사가 요구하는 공법이 현장 여건에 맞지 않고, 설계사가 설계를 변경해야 할 만큼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우회 굴착 공법이나 지장물을 임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복구하는 방식으로 하면 될 일”이라고 반박했다.
시공사와 감리사가 설계(공법) 변경을 놓고 수개월째 다투고 있는데도 발주처인 천안시는 팔짱만 낀 채 지켜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는 17일 맑은물본부 회의실에서 감리사, 시공사가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열고 의견 조율에 나섰지만 이렇다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향후 감리사를 통해 설계오류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방침만 정했다. 시가 이 자리에 설계업체를 부르지 않은 것을 놓고 업계에서는 의혹이 제기됐다.
토목·건설기술사 임모(57)씨는 “시공사가 '애초부터 설계 오류'라며 안전한 공사를 위해 설계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설계사를 회의에 참석시켜 사실 확인과 함께 대책을 협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천안시가 시공사를 압박만 할게 아니라 합리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서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공사는 안전한 공사 방안으로 '비굴착 압입공법'을 제안했다. 이 공법은 하수관을 매설하기 위해 흙을 파내지 않고 스크루가 달린 특수장비로 하수관 지름보다 큰 구멍을 뚫는 방식이다. 흙더미가 무너지는 현장에서 가시설을 설치할 수 없을 경우 작업자 안전을 위해 선택하는 공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감리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리사는 비굴착 압입공법이 공사비가 많이 들고, 현장 여건에 맞지 않는 공법이라고 했다. 맑은물본부도 공법 변경은 안전성과 함께 경제성도 따져봐야 한다며 감리사측의 입장을 거들었다.
이에 시공사 관계자는 “안전공사 공법인 '비굴착 압입공법'으로 변경하면 총공사비의 10% 정도가 증액된다"며 "설계 하자가 확실하다고 판명이 나고, 설계 변경으로 공사비 증액이 발생하면 설계사가 '벌점'을 받게 되고, 입찰에도 영향을 주니까 감리사가 설계변경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천안시 원성동 하수관 정비공사의 설계사와 감리사는 같은 회사다.
원성동 하수관 정비공사 설계용역비는 12억7,600만원에 D사 등 3개 업체가 수주했다. 또 원성동 하수관 정비공사외 2건의 통합사업 감리용역비는 51억7,800만 원으로 설계사와 같은 D사가 감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