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쓴 미국 뉴욕의 맨해튼 거리는 적막하고 어두웠다. 뉴욕주는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그달 6일에는 하루 사망자만 731명이었다. '맨해튼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노숙인과 의료진뿐'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3월 중순부터 뉴욕 전면 봉쇄(락다운)가 시작되자 맨해튼에 밀집한 레스토랑들도 불을 껐다.
젊은 세대가 많이 모이는 맨해튼의 '핫플' 중 하나인 32번가 한인타운도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았지만 딱 한 곳은 불을 켜고 영업을 했다. 2016년부터 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킨 한국의 치킨 브랜드 BBQ의 미국 1호 매장이었다. 이미 조리된 음식을 바로 사서 나가는 '그랩앤고'(Grab&Go)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배달 주문도 가능했다. 김형봉 BBQ 미국 법인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까지 미국에서는 사실상 피자집과 BBQ만 배달할 수 있었다"며 "락다운 시기 1호점은 매장을 기준으로 위아래 스무 블록까지 배달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오후 12시 BBQ 1호점의 문을 열자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왼쪽 벽면을 채운 온장고에는 종이 상자에 담긴 다양한 종류의 치킨과 볼 모양의 박스에 담긴 치킨덮밥, 김치볶음밥, 떡볶이 등이 채워져 있었다. 식사 메뉴를 선택하고 소스, 음료수를 고른 뒤 결제를 해 밖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같은 날 오후 6시. 두 시간 전 영업을 시작한 이곳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치킨과 맥주 등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펍이 있었다. 바(Bar)에서는 TV를 보며 생맥주와 치킨을 함께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주류 광고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꽉 찬 매장 테이블에 소주와 맥주, 치킨이 함께 놓인 모습은 마치 서울의 여느 주점을 닮았다. 딱 하나의 차이는 손님들의 피부색이 매우 다양했다는 점.
김민혁 점장은 그러나 뉴욕과 서울의 큰 차이를 꺼내 들었다. 그는 "한국과 달리 맥주보다 소주가 더 많이 팔리고 일반 소주보다는 과일소주를 시켜 치킨과 함께 마시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시 1층으로 올라오니 도어대시 등 배달 플랫폼 기사들이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1호 매장은 이렇듯 배달과 테이크아웃, 펍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부터 심야 시간에 손님을 맞고 배달 위주인 한국의 치킨집과는 딴판이었다. 김 법인장은 "미국인이 점심 먹는 데 드는 시간은 평균 23분"이라며 "한국처럼 정해진 식사 시간이 따로 없어 낮에는 직장인들이 포장이 다 된 제품을 사 갈 수 있게 했고 저녁엔 술과 함께 음식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펍으로 변신한다"고 말했다.
BBQ는 한국 프랜차이즈 중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영토를 넓히고 있다. 현재 미국 27개주에 약 250개 매장을 냈다. 2000년대 마스터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미국에 두 차례 진출을 시도했던 BBQ는 2014년 미국 법인을 세우며 본사가 직접 미국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6년 뉴욕 맨해튼 32번가에 1호점 직영 매장을 열었고 2017년 가맹 사업도 시작했다.
특히 BBQ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 뒤 한국식 배달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 매장에서 먹거나 테이크아웃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 있던 미국에서 '피자처럼 집에서 시켜 드세요'를 담은 전단까지 만들어 몇 년 동안 알렸다. 배달 플랫폼이 본격 등장하기 전까지 BBQ 점포들은 배달기사도 따로 뒀다.
전화로 주문을 받다 온라인 시스템을 만들어 웹페이지에서 음식을 시킬 수 있게 한 것이 2019년. 이듬해인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 김 법인장은 "코로나19로 4월까지 매출이 주춤하다 5월부터 매출이 두 배까지 껑충 뛰었다"며 "다른 레스토랑들이 배달 광고를 시작할 때 우리는 이미 시스템을 만들어 둔 덕을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특히나 단순한 메뉴 구성 등 배달에 안성맞춤이다 보니 우버이츠, 도어대시 등 배달 플랫폼에서도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외식업의 빙하기였던 그해 BBQ 가맹점들도 매출이 크게 올랐다. 그러다 보니 미국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레스토랑들에 지급하던 보조금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김 법인장은 "코로나19 속에서도 가맹점을 내고 싶다는 연락이 올 만큼 잘됐다"며 "BBQ는 이후 해마다 50% 넘는 매출 성장률을 찍으며 고속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BBQ는 2021~2023년 3년 연속 글로벌 외식업 전문지 '네이션스레스토랑뉴스'에서 미국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 외식 브랜드에 뽑혔다. 전년보다 매장 수, 총매출, 매장당 매출을 기준으로 선정한 25개 레스토랑에서 BBQ는 2021년 5위, 2022년 2위에 이어 2023년에도 7위에 올랐다.
개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생계형 치킨집이 대세인 한국과 달리 미국 BBQ는 여러 개의 매장을 소유한 멀티형 점주가 장사하는 곳이 많다. BBQ 미국 관계자는 "가맹점주 가운데 70%가량이 여러 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가지고 있다"며 "5개 이상을 운영하는 메가 프랜차이지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그만큼 BBQ 매장이 수익성을 보장받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치킨은 K푸드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2022년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의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식' 조사에서 프라이드치킨은 16.2%로 12.5%를 차지한 김치를 여유 있게 따돌리며 1위를 차지했다.
이슬람교(돼지고기), 힌두교(소고기)처럼 금기시되는 먹거리가 아닌 닭. 사실 이를 튀긴 요리는 미국에도 많다. 그런데도 한국의 치킨이 'K푸드'의 대명사가 된 배경을 두고 BBQ는 ①미국인에게 익숙한 음식 ②K컬처의 영향 ③맛을 꼽았다. 김 법인장은 "미국 사람들의 입맛은 보수적이라 새 음식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냉면이나 도토리묵같이 미국인에게 너무 낯선 음식으로 시작하려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사랑의 불시착', '도깨비'와 같은 인기 한국 드라마에서 치킨이 꾸준히 등장한 점,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 등 한국 아티스트들의 인기도 '한국 음식=치킨'이라는 공식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김 법인장은 "BTS의 로스앤젤레스(LA) 공연, 블랙핑크의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공연이 끝난 뒤 인근 BBQ 매장으로 손님이 몰려 매출이 크게 올랐다"며 "한국 가수의 공연을 보고 난 뒤 한국 음식을 맛보자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이 주로 먹던 퍽퍽하다 느낄 정도의 '드라이(dry)'한 맛의 치킨과는 다른 '겉바속촉'의 한국 치킨이 주는 독특한 매력도 BBQ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화룡점정은 양념과 소스였다. 한국 치킨은 매콤한 맛부터 달콤한 맛, 짭조름한 맛 등 다양한 양념에 치킨을 버무려 제공하는데 미국은 찍어 먹는 소스를 따로 제공하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김 법인장은 "미국의 맥도날드가 2022년 '코리안 윙' 메뉴를 새로 내놓았는데 아예 양념이 묻혀 나왔다"며 "이전에는 따로 찍어 먹는 디핑 소스를 제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치킨'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 치킨의 맛을 표준화해 미국에 알리고 있는 BBQ는 올해 네브래스카주 등 아시아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내륙으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1월 중에는 뉴저지 JFK공항에 첫 공항 내 매장을 내고 순살 치킨, 샐러드, 샌드위치와 맥주 등을 함께 팔 예정이다. "다른 미국 공항에도 매장을 열려고 한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
한편 BBQ는 파나마, 코스타리카와 같은 중남미에도 마스터 프랜차이즈 판권을 판매했다. 김 법인장은 "최근 바하마에서도 개인 사업자와 계약을 성사시키며 캐리비안 국가까지 진출하고 있다"며 "미국을 발판으로 중남미 시장까지 매장을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