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일부 비명계 정치인들은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망가졌다고 말이다. 강성지지층에 둘러싸여 이견을 용납지 않는 정당, 원리 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정당, 대표 1인을 위한 방탄 정당. 그들은 오늘날 민주당이 직면하고 있는 온갖 비판과 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이 대표에게 묻고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에게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다. 그가 대표에 앉기 전부터 민주당은 그런 당이었다. 먼저 팬덤 정치. 조국 사태 당시 금태섭 의원에게 쏟아진 숱한 공격을 우리는 기억한다. 총선을 앞두고 그를 떨어뜨리기 위해 친문을 자처하는 여러 정치인이 자객으로 나섰다. 강선우 전 민주당 부대변인이 강성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공천됐다. 이를 두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쓰레기통에 '조국 수호' 써 붙여 내보냈어도 당선"이라고 비판했다.
양당제 폐해를 극복하자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놓고 위성정당을 만들어 제도를 무력화한 일이나, 2021년 기존 당헌을 고쳐가며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냈던 일은 또 어떤가. 그마저도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권리당원 투표에 부침으로써 그 책임을 당원들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이낙연 전 대표가 있었다.
사실 민주당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이낙연 전 대표의 책임도 크다. 그는 민주당이 제일 잘나갔던, 그래서 안하무인으로 당내 이견을 억압하고 원리 원칙을 저버린 시기에 공동선대위원장·당대표 등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을 했다. 그때는 민주당에 김대중·노무현 정신이 살아있었던가. 상대가 워낙 변변치 못해 선거에서 매번 이기니 문제시되지 않았을 뿐, 사법리스크 정도를 제외하면 이낙연 대표 시절의 민주당이 지금보다 뭐가 더 나았는지 잘 모르겠다.
제3지대 정당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특히 "전과자가 많다"며 당을 비판하고 나간 이 전 대표에게선 '이재명과 사이가 안 좋고 계파싸움에서 밀려났다'라는 것 말고는 뚜렷한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가 추진하는 신당 '새로운미래(가칭)'는 금태섭·양향자·이준석·조응천 등이 추진하는 신당과 결이 다르다. 적어도 이들은 소속 정당이 잘나가던 시절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강성당원들에게 미운털 박혀 크고 작은 고초를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당내 입지 변화에 따라 주장이 달라진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하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드는 건 그래서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하느냐 마느냐 하던 시기, 오너 일가의 무책임한 자구 계획에 혹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기업회생 의지는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자기 뼈를 깎는 희생과 실천 없이는 그 어떤 빛나는 이상과 의지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정치도 똑같다. 이낙연 전 대표가 진정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국민께 돌려드리기 위한" 우국충정으로 정치를 바꿔보려는 거라면, 단순히 지난날의 잘못을 사과하고 말 게 아니라 향후 있을 총선과 대선에 불출마 선언이라도 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 희생도 없이 만드는 미래는 '새로운 미래'가 아닌 해로운 미래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