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대출 갈아타려면 995만 원"...정책에 기생하는 피싱 골머리

입력
2024.01.17 04:30
대환대출 소개하며 기존 대출 상환 요구
햇살론 대출받아 준다며 수수료 10~50%
대출 상환 요구할 경우 사칭 의심해야



"OO저축은행인데요, 이번에 정부에서 저금리로 대환대출 해준다는 뉴스 보셨죠? 현재 고객님 상황에서는 5~6%대 금리로 4,400만 원까지 대환대출이 가능하네요."

높은 대출 이자로 신음하던 A씨에게 정부가 시행한다는 대환대출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런 전화까지 받자 매달 나가는 이자를 아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다만 저축은행 직원은 신용도 때문에 기존 캐피털사 대출을 먼저 상환해야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며 995만 원 입금을 요구했다. 그의 말을 믿고 입금했지만 이후 저축은행 직원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제야 A씨는 보이스피싱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부가 사회 취약층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 지원을 내놓을 때마다 이를 빙자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하면서 금융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중 대환대출 사칭 피해 비중이 12.5%로 전년(4.7%) 대비 크게 늘었다. 최근 대환대출 인프라 대상이 아파트 주택담보대출로까지 확대됐고, 금융권도 대출 지원 등 다양한 상생금융 방안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이런 피해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실제 각종 금융 지원책이 나올 때마다 보이스피싱이 뒤따른다. 최근에는 캐피털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이 2억 원까지 전세자금대출을 해줄 수 있다며 피해자에게 접근, 신용등급 상향을 위한 예치금 입금이 필요하다며 총 4회에 걸쳐 7,400만 원을 편취하는 일도 있었다.

금융 지원책을 악용하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6월 시중은행에서 서민·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대출 상품인 '햇살론'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며 중개 수수료를 불법으로 수수하고 대포폰 개통에 필요한 서류를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판매한 일당 24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2022년 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햇살론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사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 대출에 필요한 서류(주민등록등본 사본, 건강보험 사본, 급여 내역서 등)를 받아 총 2,301회에 걸쳐 245억 원의 대출을 대신해 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출 금액의 10~50%에 달하는 수수료를 편취했다.

피해가 급증하지만 근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기관이라고 소개하면서 개인 정보를 묻거나 기존 대출 상환 및 신용등급 상향을 위한 자금을 요구할 경우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확인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사고 피해 발생 시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하고 피해구제를 신청할 것을 안내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결국 소비자들의 금융 인식이 개선돼야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예방 교육을 하는 한편 범죄자에 대한 수사 의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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