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연, 상엽

입력
2024.01.1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몇 년 새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의 활약이 돋보인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의 말레이시아 출신 양쯔충(楊紫瓊)과 베트남계 키호이콴이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각각 받아 화제를 모았다. 이정재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으로 2022년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비영어권 최초로 수상했다. 최근 아시아계 남자배우 중 맨 앞줄에 선 이는 재미동포 스티븐 연(한국명 연상엽)이다.

□ 스티븐 연은 ‘성난 사람들(비프)’로 지난 7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상 리미티드 시리즈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아시아계 최초로 안았다. 이어 14일 크리틱스 초이스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5일에는 드라마의 아카데미라는 에미상 트로피까지 가져갔다. 스티븐 연은 2021년 ‘미나리’(2020)로 아시아계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10년 처음 출연한 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꺾이지 않는 상승세를 보여오고 있다.

□ 재미동포 배우라고 하나 활동이 미국과 연기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로 한국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에 출연했고, 재미동포 정이삭 감독의 미국 영화 ‘미나리’에서는 윤여정, 한예리와 연기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올해 선보일 가능성이 큰 봉 감독의 신작 ‘미키 17’에도 출연했다.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2023)의 제작을 맡았고, 내레이션까지 해냈다. 한국 영화계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맹활약하는 재미동포 배우는 그가 유일하다.

□ 스티븐 연은 재미동포 1.5세다. 5세 때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그는 ‘버닝’과 ‘미나리’에서 한국어 대사를 또렷하게 발음해 낸다. 스티븐 연은 지난해 한국 영화인들을 초청해 국내에서 ‘백남준’ 특별 상영회를 열었을 정도로 인간관계를 다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일정 문제로 마블영화 캐스팅이 최근 불발됐으나 블록버스터에 언제든지 출연할 수 있는 위상에 있다. 아시아계로서 새 길을 내면서도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계 사이 가교 역할을 자처하는 그는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할 배우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