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2년 가까이 '국민 통합'을 외쳤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사회적 갈등 정도는 더 심각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민 절반 이상이 윤석열 정부 들어 집단적 갈등 문제가 오히려 더 늘었다고 답했다. 산적한 여러 갈등을 해소하겠다며 야심차게 발족한 국민통합위원회(위원장 김한길)의 존재감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여론은 입을 모았다. 국민과 좀 더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에 나서달라는 게 여론의 주문이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가 전국 1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7일 발표한 '2023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갈등이 늘었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은 63.5%에 달했다. 1년 전 같은 조사 응답 비율(57.8%)보다 5.7%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국민들이 사회 갈등 정도가 더 심해진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전 정부의 집권 2년차와 비교해 보면 박근혜 정부(2014년·54.3%), 문재인 정부(2018년·52.4%)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갈등이 줄었다"는 답변은 8.9%에 불과했고, 27.6%는 "이전 정부와 비슷하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 갈등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들은 "야당이나 반대 세력과의 소통과 협치 부족했다"(48.2%)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국정운영 기조나 정책 특성 때문"(22.5%)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야당이나 반대 세력의 갈등 조장 때문"이라는 의견은 16.7%였는데, 소통 부족과 국정 기조 탓이라는 의견을 합치면 대략 70%가 갈등 고조의 이유를 정부 탓으로 돌린 셈이다.
"부패한 패거리와 싸우겠다"는 신년사로 집권 3년차의 문을 연 윤 대통령의 완고한 태도는 국민들 눈엔 '정부가 통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비쳤다. 이런 여론이 반영된 결과 "현 정부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74.6%나 됐다.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 비율(25.4%)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1년 전 조사(73.1%) 때보다 갈등 해소를 위한 대통령의 노력이 줄었다고 국민들은 본 것이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나 반국가세력 척결 등 현 정부의 국정기조에서 이념이 지나치게 과잉돼 갈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 소모적인 이념 갈등이 국민들을 지치게 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어떤 집단이 갈등에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응답자들은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국회("책임이 있다" 응답 비율 90.8%)와 언론(90.8%)을 지목했다. 이어 중앙정부(84.5%), 대통령(81.0%), 지방정부(75.4%), 법조계(75.2%) 등이 갈등에 책임이 있는 집단으로 지목됐다. 특히 올해 조사에선 법조계의 응답 비율이 전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는데 △국민 법감정과 동떨어진 흉악범죄 양형 △법조계 인사들의 정부 요직 중용 등이 이유로 꼽힌다.
이 소장은 "검찰 수사와 법원 판단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사안들이 많아졌지만 정작 결과는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된 경우가 많았다"며 "과거에 비해 법조계에 대한 신뢰나 갈등 해소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진 김한길 위원장이 국민통합위원회를 맡아 '국민 통합' 전략을 짜고 있지만, 국민들은 정부의 갈등 해소 노력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31.6%가 "(국민통합위원회를)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고, 알고 있는 응답자의 79.1%는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출범 2년차에 접어들었음에도 국민 10명 중 8명 꼴로 위원회가 통합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위원회의 노력과 더불어 사법개혁 등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