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탈당을 “분열” “해당 행위”로 비난하는 건 총선 승리에 급한 민주당 내부의 시각이다. 164석을 쥐고 뭘 했는지 불만스런 외부 관점에선 “‘검찰 독재’와 ‘방탄’의 수렁에서 헤매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거대 양당 비판에 수긍이 간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은 황운하 의원 등에 떡 공천 적격 결정을 내리는 걸 보면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는 지적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신당 새로운미래(가칭)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 대안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민주당에)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졌다”는 이 전 대표의 한탄 어린 평가가 자신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의 위기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만이 아니다.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사라지고 강성 지지층 뒤에 숨어 원칙과 가치를 저버린 민주당의 오늘엔 이 전 대표의 몫이 있다. 2021년 당대표였던 그는 민주당 귀책사유로 인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 당헌당규 개정을 당원투표에 부쳤다. 원칙을 훼손하며 책임은 당원에 전가한 비겁한 리더였다. 2020년 21대 총선 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훼손한 위성정당을 설립할 때 “비난은 잠시, (선거패배) 책임은 4년”이라는 말을 남긴 것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그였다. “원칙 있는 승리가 첫 번째이고 그다음이 원칙 있는 패배”라고 말하고 실천했던 노무현 정신은 여기 없다. 그렇게 국민과의 약속을 우습게 여긴 결과가 민주당 지지 철회, 30% 넘는 무당층의 존재다.
대선 패배 후 탈당까지 행보도 아쉽다. 지금 “다당제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여태 표류하는 선거제 개혁에 원칙을 상기시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나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 등 당 위기는 일차적으로 친명 지도부의 책임이지만, 미국에 체류하던 이 전 대표도 지켜보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이제서야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탈당하며 거친 말을 남기다니, 대선 주자급 중진 정치인이면 진작 당내 견제 역할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전 대표의 11일 탈당 기자회견은 민주당 비판보다 처절한 자기반성이어야 했다. 그는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과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부끄럽다”며 사과했지만 훨씬 치열해야 했다. 과거를 뒤집어야 그 미래가 새롭다. 제3지대 빅텐트만 치면 된다는 안이한 계산을 버리고 ‘원칙 있는 패배’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양당 정치 타파’를 넘어선 뜻이 무엇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보다 훨씬 거리가 가깝다”고 했는데 혐오 정치와 능력주의의 해악을 모르는 듯하다. DJP 연합의 중심엔 남북화해, 복지 확대, 5·18 해원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구현하려는 가치가 있었다.
21세기 가치를 포착할 시대감각, 가치가 어긋나는 세력과는 선을 그을 용기가 이 전 대표에게 필요하다. 텐트를 키울수록 빈번해질 ‘새로운미래의 지향은 뭐냐’는 질문에 답을 내놔야 한다. 성평등·소수자 인권·공정·기후위기 등 이념을 뛰어넘는 이슈에 대해 잃을 표를 두려워 말고 분명한 원칙을 밝혀야 한다. 민주당을 때릴 때 반사돼 돌아올 ‘이낙연은 뭘 했느냐’는 반격에 변명 아닌 행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추운 빅텐트에서) 기꺼이 함께 밥 먹고 함께 자겠다”(14일 미래대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고 하는 건지 유권자를 설득하기 바란다. 이낙연의 외롭고 두려운 승부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