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6년 만에 취재 현장으로 다시 돌아온 여의도는 지나치게 살벌해졌다. 문자 그대로 '죽음의 정치'가 판을 친다. 증오의 칼날에 베인 제1야당 대표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럼에도 거짓과 선동, 저주와 조롱은 멈추질 않는다. 여야는 백날 싸우고, 국민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시늉이라도 했던 통합, 협치, 대화, 타협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정치가 됐으니, 일단 먼저 죽이고 보자는 살기만 도처에 넘쳐난다. 이대로라면, 22대 총선도 내전 상태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디 선거는 누가 더 많이 살리느냐를 가리는 승부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고달픈 국민의 삶을 챙기는 게 본질이다. 살리는 정치를 위해, 국민들은 어떤 정치인을 더 많이 살려야 하나.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제3신당도 아닌 국민이 제대로 이기려면 정성 어린 복기가 필요하다.
①민심과 동떨어진 오만, 패배 지름길 = 2012년 총선 때 민주당은 누가 봐도 들떠 있었다. 처음 정당을 출입했던 '말진' 기자에게도 속내를 들킬 정도였다. 그러나 믿을 건 'MB(이명박) 타도를 위해 야권 모두 뭉치자'는 구호뿐, 전략은 없었다. 오만은 오판을 낳았다. 막말을 일삼던 '나꼼수' 멤버 공천에 국민 다수가 경악했지만, 민주당만 태연했다. 과반을 노렸던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과반을 안겨줬다.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너무 간과했다. 반(反)윤석열만 부르짖고, 친이재명당으로 치닫는 지금과 뭐가 다를까." 그해 총선 다음 날이 "지옥 같았다"던 민주당 의원의 공포 섞인 침묵이 유독 길어졌다.
②이토록 절묘한 균형, 잠깐의 바람 = 2016년 총선은 다음 날 새벽까지 대혼돈이었다. 정치권도, 여론조사기관도, 언론도 미처 예측 못 한 절묘한 3당 체제의 균형을 국민이 만들어줬다. 정부·여당의 독주를 심판했고, 제1야당엔 반사이익에만 기대지 말라고 회초리를 내리쳤다. 3등에게는 캐스팅보트를 쥐여줬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협치를 하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신당은 뒷심이 부족했다. 인물도, 비전도 허약한 탓이었을까. "신당 바람은 한번 불기 시작하니 무서웠지만 잠깐이었다.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 결국 사그라들더라." 제3지대 신당을 도모하는 전직 의원은 스스로에게 주문일지, 다짐일지 모를 말을 읊조렸다.
③180석의 저주, 쏠림은 독약 = 2020년 총선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 국민은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민주당에 맡겼지만, '아웃풋'은 못 미더웠다. 여야 모두 강성 지지층에 매몰돼 극단의 정치만 일삼으니 여의도는 민심과 동떨어진 외딴'섬'이 됐다. "180석은 여야는 물론 국민에게도 저주다. 견제 없는 폭주도 문제지만, 자질 없는 의원들이 걸러지지 못한 게 더 뼈아프다." 잔뼈 굵은 정치권 인사는 '금배지'들의 하향평준화를 한탄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조훈현 전 의원)는 말은 여야 다 새길 필요가 있다. 그러니 희망회로만 돌리지말고, 역대 총선 다음 날 새벽을 떠올려보라. 언제 속 편히 웃었고, 언제 처절하게 울었는지. 국민들도 지난 선택을 반추하며, 이번엔 제대로 이기는 선택을 해보자. '죽음의 정치'를 살려내는 건 결국 국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