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불고기덮밥,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김밥, 떡볶이, 짜장면, 우동.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 모든 메뉴를 단돈 500원에 제공하는 특별한 ‘팝업 레스토랑’이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이 방학 기간 한정 운영하는 이름하여 ‘500원 식당’이다. 이달 15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블라썸커뮤니티센터 1층에서 매주 수요일을 뺀 평일 점심 때 문을 연다. 아동·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11일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이영순 조합 이사장은 “방학마다 삼각김밥, 컵라면 등으로 점심을 때우는 동네 아이들을 보면서 ‘든든한 밥 한 끼 해주자’ 싶어 시작했다”며 “오는 손님 대부분이 혼자서 밥을 챙겨 먹기 어려운 초등학생”이라고 설명했다.
500원 식당이 첫선을 보인 건 2022년 여름방학이다. 그때만 해도 밥값은 무료였다. 식재료 등 유지비는 경남도와 창원시가 주관한 ‘공유경제활성화 지원사업’에 공모해 받은 보조금 1,000만 원으로 충당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우로 손수 만든 떡갈비를 내놔도 손님이 뜸했다. 이 이사장은 “무료로 줬더니 결식아동으로 낙인찍힐까 봐 오히려 안 오더라”면서 “아이들에게 부담은 주지 않으면서 내 돈 내고 먹었다고 할 만한 금액을 고민하다 500원을 받기로 하고, 받은 돈은 모두 기부했다”고 말했다. 당당해진 아이들은 금세 단골이 됐다. 식사 후엔 양손 엄지를 세워 ‘쌍따봉’을 날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메뉴에 넣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초기 20여 명에 불과했던 손님은 50여 명까지 늘었다.
음식을 더 넉넉히 준비해 더 많은 아이들을 받고 싶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는 “50명부터는 집단급식소 신고 대상이라 영양사 채용 등 부수 비용이 많이 든다. 당시엔 식당을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은 현실이 됐다. 그해 겨울방학엔 식당을 열지 못했다. 이듬해 여름은 조합과 거래 중인 창원신협이 700만 원을 지원하면서 다시 밥을 짓게 됐지만 도움의 손길이 끊긴 뒤엔 운영에 또 어려움을 겪었다.
중단 위기에 놓인 식당을 살린 건 이웃들이었다. 지난해 8월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효성, 로만시스, 구구, 더유니콘, 마린로지텍 등 지역기업들의 후원이 쏟아졌다. 인근 상인들도 음료, 쌀, 야채, 고기, 참기름 등을 갖다줬다. 개인 기부자 230여 명도 입금자명에 ‘응원합니다’ ‘밥 꼭 해주세요’ 등의 메시지를 달아 1원부터 200만 원까지 정성을 보탰다. 5개월 만에 3년 치 운영비와 맞먹는 5,000만 원이 모였다. 이 이사장은 “일부러 찾아와 꼬깃꼬깃 접은 돈 3만 원을 주고 가는 할머니도 계셨다”며 “이웃들의 온정이 풍성한 밥상을 만들어 줬다”고 감사해했다.
조합의 목표는 방학만큼은 확실하게 아이들 밥상을 책임지는 것이다. 최근 조합원들과 벚꽃을 활용한 식혜 판매 등 사회적 기업 준비에 나선 것도 식당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다. 이 이사장은 “방학 때만이라도 아이들이 밥 걱정하지 않는 마을을 10년, 20년 이상 지속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