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사람들이나 유언장 쓰면 되지 집 한 칸밖에 없는데 뭘 쓰냐고 그래요. 잘못된 생각이에요. 무책임하고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 원에 달하는데 유언장 안 쓰면 자녀 간 상속 다툼을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됩니다."
원혜영(73) 웰다잉문화운동 대표가 꼽는 '좋은 죽음'의 핵심은 자기 결정권의 실현이다. 죽음을 앞두고 중요한 선택들을 계속 미루다 보면 △임종 순간은 의사가 △장례는 극도로 상업화된 장례업자가 △유산은 법과 자녀들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은 사라지고, 품격보단 다툼과 분쟁이 발생한다는 게 원 대표의 생각이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원 대표는 2019년 12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나이 70에 제3의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했던 그는 '웰다잉문화운동'의 길을 택했다. 주변에서 '자기 결정권' 없이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일 서울 중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내 삶의 마지막 과제들은 자신이 결정하고 떠나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 대표 주위에도 유언장을 쓴 선후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자산가들에게 물어봐도 유언장을 쓴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2015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국내 유언장 작성 비율은 5% 미만이다.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많든 적든 부를 축적해 재산을 남기고 사망하는 첫 세대가 80대 이상인데, 주변에서 유언장을 안 쓰다 보니 아무도 쓸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 대표는 "유언장을 작성해온 전통도 없고 수백 년간 해오지 않은 일을 하려면 힘들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집 한 채 때문에 가족이 풍비박산 나는 걸 보면 유언장은 꼭 써야 한다"고 밝혔다.
유언장이 법적 효력을 갖추려면 요건에 맞게 잘 써야 하지만, 원 대표는 일단 편하게 써보길 추천한다. 원 대표도 이미 유언장을 작성했다.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시작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적으로 노인으로 분류되는 65세가 되거나 삶의 변화가 생기는 은퇴 시점에 맞춰 써볼 것을 권고했다. 원 대표는 "어차피 닥쳐올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하면 내 삶을 훨씬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며 "유언장이라는 게 어마어마한 노력이나 준비, 학습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우선 쓰고 고쳐나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다면 내용과 형식을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상속인(자녀 등)이 요구할 수 있는 최소 상속분인 유류분을 고려해 재산을 분배하고 법적 효력을 갖추기 위한 서식들을 익혀야 한다. 원 대표는 "큰아들은 잘살고 작은아들은 형편이 어려워도, 둘째에게 재산을 몰아주면 분쟁을 유발하는 꼴밖에 안 된다"며 "아들이 둘이라면 유류분인 4분의 1은 잘살든 못살든 아들 각각에게 무조건 줘야 한다. 치매가 오기 시작하면 유류분마저 분쟁 대상이 될 수 있어 미리 써둬야 한다"고 말했다.
원 대표가 바라는 점은 또 있다. 유언장을 작성할 때 상속 재산의 10%, 그게 부담된다면 적어도 1%는 사회에 기부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상속재산 규모는 96조506억 원에 이른다. 원 대표는 "10%라면 9조 원이고 1%라고 해도 1조 원에 이르기에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복지·문화·과학기술 연구에 수조 원이 쓰일 수 있다"며 "장례식 때 비싼 수의 안 입고 삼일장 안 하는 것만으로도 수백만 원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원 대표는 1일부터 웰다잉문화운동 홈페이지에 유언 무료 상담센터를 열었다. 소순무 한국후견협회장 등 상속 전문 변호사 16명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편하게 유언장과 관련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 원 대표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유언장 작성에 대해 물어보는 게 부담되는 분들을 위해 마련했다"며 "유언장 작성에 대한 사소한 것이라도 물어봐도 좋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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