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되고 있는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고려의 왕권은 미약한 반면 호족들이 득세하고, 불교가 정치·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조선은 고려와 달리 강력한 유교적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하고자 성리학을 받아들여 보급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성리학이 아직 민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의 우리나라 전통적 혼례 방식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처가에서 살며 자식을 낳고 기르는 형태)이었으며 비교적 자유연애를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혼인 관습은 재산상속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상속에 있어 아들과 딸의 차별은 없었다. 조선 전기 만들어진 경국대전에 의하더라도 제1순위 상속인은 자녀이고, 제2순위 상속인은 배우자인데, 자녀는 적자이기만 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같은 순위의 상속인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 접어들면서 장자우대, 남녀차별 등의 경향이 나타나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혼인양식도 남귀여가혼에서 친영례(親迎禮, 신랑이 처가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여 신랑 집으로 데리고 와서 혼례를 치르는 방식)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호주상속인이 우선 단독으로 재산상속을 하고 그후 동생들이 호주상속인에게 재산을 나눠달라는 청구를 할 수 있을 뿐이었는데 딸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하였다.
1960년에 시행된 우리 민법은 자녀들의 공동상속을 원칙으로 하였지만 상속분은 호주상속인, 남성 상속인, 결혼하지 않은 여성, 결혼한 여성 순서로 되어 자녀 간 불평등이 여전히 유지되었다. 1977년 상속법 개정에서 남녀차별이 다소 완화되었다가 1990년 상속법 개정으로 상속분에서의 남녀차별이 없어졌다.
이와 같이 법으로는 상속에 있어 장남과 차남, 아들과 딸의 차이는 없어졌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유언 또는 증여 방식으로 장남에게 제일 많이 상속하고 있고 아들과 딸도 차별하여 상속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우리의 전통적 상속제도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전 우리나라에서 결혼, 상속 제도에 있어 남녀차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상속제도는 나라와 문화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수렵문화인지 농경문화인지 유목문화인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추운 지방인지 더운 지방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과거 수천 년에 걸친 전통적 문화, 풍속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기후적, 역사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왕권은 강하지 않아 전제정치를 하기 어려웠고 비교적 자유로우면서 국민들의 자주적 의지는 강했고, 문화적 감수성도 풍부하였다. 최근 한류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우리의 오랜 문화적 역량, 전통이 오늘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우리 전통을 조선 중기 이후의 보수적 성리학적 문화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세대 간 문화 격차가 크다. 나이 든 세대는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전통이 훼손되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한반도를 관통해 온 전통이 나이 든 세대가 익숙한 그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남녀 평등한 결혼, 상속 문화가 우리의 전통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부디 장자, 아들 위주로 상속, 증여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 전통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