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20일 창당한 ‘한국농어민당’은 험난한 8년의 시간을 거쳤다. 선거철에만 농촌의 현실에 ‘반짝’ 관심 갖던 정치인들 행태에 신물 난 농업인들이 2015년부터 창당을 꾀했지만, 정작 세력화까지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농민들 기류가 2016년과 2020년 총선을 거치면서 크게 달라졌다. 농촌 현실은 갈수록 암울해지는데 응답 없는 정치권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공감하는 농민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위기에 내몰린 어업인들이 가세하면서 창당의 깃발을 올리는 데 결정적 동력을 제공했다.
총선에 맞춰 등장하는 신당을 보면 4년 마다 달라지는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농어민당의 사례에서 보듯 올해도 4월 총선을 앞두고 ‘생존’과 ‘기성정치 심판’을 외치며 여러 정당이 창당 절차를 밟고 있다.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당정보 및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이내 등록된 정당과 창당준비위원회 명칭에는 ‘중소자영업당’, ‘직능자영업당’ 등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담겼다. 또한 ‘국민의심판(창준위)’ ‘민심동행(창준위)’ ‘특권폐지당(창준위)’ 등 기성정치 심판 의지를 내건 조직도 여럿 눈에 띄었다. 기성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생존 위협이 ‘관전자’였던 이들을 ‘참여자’로 이끈 셈이다.
2016년 총선 때는 대한당, 자유통일당 등 기독교계 정당이 원내 진입을 노렸다. 2020년 총선에서는 청년층의 소득과 경제·결혼문제 등을 해결해보겠다며 기본소득당, 민생당, 결혼미래당(창준위만 구성) 등의 창당 작업이 활발했다.
이와 비교해 현재 신당들에는 좀더 엄중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됐다. 한 소수정당 관계자는 "지난 총선만 해도 청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하는 집단이 지지를 얻어 원내 진입(기본소득당)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는데, 올해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더 커진 양상"이라고 말했다.
김진범 농어민당 사무총장은 올해 신당의 트렌드에 대해 "우리처럼 입당에 꿈쩍 않던 이들이 뒤늦게라도 동참한 건 그간 거대 양당에서 약자들을 대변하는 데 소홀했던 이유였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선거철만 되면 조상의 고향까지 언급하거나, 초·중·고등학교 인연까지 끌어모아 투표를 부탁해놓고는 정작 당선 후에는 돌아보지 않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당원들이) 정치참여에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내 진입을 꿈꾸지만, 창당 목표만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는 게 신당 창당 참여자들의 속내다. 음주운전 사고로 동생을 잃으면서 창당에 나섰다는 김필규 국민의심판(창준위) 대표는 "정치권은 싸우기만 할 뿐 민생에 관심이 없다는 걸 느껴 직접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창당에) 나섰다"고 말했다. 특권폐지당(창준위) 관계자는 "지도층의 특권폐지가 있어야만 기득권을 내려놓고 근본적인 나라 개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총장은 “창당에 성공은 했지만 정치판 또한 ‘빈익빈 부익부’라는 걸 깨닫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왜 차디찬 광야에 나오는지 정치권이 한 번쯤 헤아릴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