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컴(몰래 컴퓨터)하다 엄마한테 등짝 스매시를 당할까 봐 컴퓨터 열기를 식히려 물티슈로 박박 닦곤 했어요."
취업준비생 조모(26)씨는 요즘 귀가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코딩 수업에 매달려 있지만, 종만 땡 치면 집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 게임을 그대로 구현한 '메이플랜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는 오후 7시,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켠다. 조씨는 12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다"며 "힘든 취업생활의 단비 같은 존재"라고 웃었다.
17년 만에 재등장한 온라인 게임에 쏟아지는 이상 열기가 예사롭지 않다. 복고의 유행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2030세대가 주도해 유년기 향수를 불러낸 점이 이채롭다. 추억의 또 다른 소환, 개성을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의 발현, 취업 등 고단한 현실을 잊고 싶은 과거의 희구 등 폭증하는 이용자 수를 바라보는 해석은 다양하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메이플랜드는 지금도 서비스 중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2007년 버전이다. 출시 4개월밖에 안 된 게임치곤 반응이 심상찮다. 이달 기준 누적 이용자는 53만 명, 동시접속자 수도 5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페미니즘 백래시(변화에 대한 반발심리)', '확률 아이템 논란' 등으로 흔들리는 본진 메이플스토리보다 관심은 외려 더 많다. 실제 네이버·구글 주요 검색 트렌드에서 메이플랜드의 지수가 더 높게 찍히고 있다.
사실 게임 자체는 보잘것없다. 세월을 역행한 만큼 즐길 콘텐츠가 많지 않고 이용자 편의성도 확 떨어진다. '쉽고 빠름'을 추구하는 요즘 게임 방식과도 거리가 멀다. 단적으로 캐릭터가 한 단계 성장하는 '레벨업'을 하려면 하루 종일 걸린다. 또 캐릭터 수련 방법인 '사냥'을 할 때는 같은 버튼을 여러 번 연타해야 겨우 괴물 한 마리를 잡는다. 게임 '피로도' 낮추기에 혈안인 업계 추세를 거스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청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이 먼저 꼽는 매력은 추억의 소환. 궁수 캐릭터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이모(32)씨는 "게임을 하면서 동생이랑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쓰며 벌벌 떨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그때의 장난이 되살아날 때마다 괜히 미소 짓게 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태동기를 경험한 30세 안팎 젊은이들에게 향수를 부르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네버랜드 신드롬'의 범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주목한 이 현상은 ①나이보다 젊게 살며 ②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문화를 말한다. '과거로 돌아가려는(return)' 행태가 가장 큰 특징으로, 이번 열풍 역시 2030세대의 '돌아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물가, 높은 취업 문턱 등 팍팍한 현실에 지친 젊은 층에게 추억에서 오는 익숙함이 안식처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마법사를 키우는 이모(28)씨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직장생활에서 탈출구가 필요했다”며 "게임을 할 때는 옛 생각에 빠져 걱정이 사라진다"고 귀띔했다.
취업 실패 등 결핍이 많은 청년들에게서 주로 엿보였던 네버랜드 신드롬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띠부띠부실(포켓몬이 그려진 스티커)'이 동봉된 포켓몬빵을 사기 위한 편의점 오픈런, '디지몬 어드벤처' 영화 붐, 시크릿쥬쥬 세트 등 다른 유행 사례를 보면 구매력을 갖춘 직장인들이 대거 동참했는데, 메이플랜드의 인기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다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네버랜드 신드롬이 이제 삶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면서도 "돌아감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주로 나타나는 만큼 20대 청년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