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 아쉬운데...정유사들이 2023년 국제 유가 오를 때 기름값 덜 올린 까닭은

입력
2024.01.14 14:00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2023년 가격변동 분석


2023년 국제 유가가 오를 때 국내 정유사들은 오히려 기름값을 내려 판매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내수 경기 침체로 석유 제품 수요가 줄면서 국내 4개 정유사들이 가격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정부가 물가 인상 요인을 줄이기 위해 가격 점검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에너지 소비자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을 바탕으로 2023년 1~12월 석유(휘발유·경유) 시장 가격을 주 단위로 분석해 가격 동향을 살펴봤다. 그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국제 휘발유 가격이 리터(L)당 9.79원 올랐지만 국내 정유사 휘발유 가격은 L당 14.23원 떨어져 사실상 국제 유가보다 24.02원 더 싸게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

국내 정유사들은 경유 가격 또한 국제가 인하 폭보다 더 낮춰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제 경유 가격은 L당 116.56원 내려갔으나 정유사의 경유 가격은 L당 118.29원 떨어져 국제 유가보다 1.73원 더 많이 인하했다.

지난해 국제 휘발유 가격은 1월 첫째 주 배럴당 85.36달러에서 꾸준히 상승해 4월 셋째 주 배럴당 101.88달러까지 올라갔다가 하락세로 돌아서 7월 셋째 주 배럴당 85.41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다시 상승해 9월 5주 차 들어 107.71달러까지 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면서 12월 넷째 주 85.43달러로 마감했다. 국제 경유 가격은 1월 첫 주 배럴당 113.57달러에서 하락해 5월 셋째 주 배럴당 86.72달러까지 내려갔다가 9월 5주에 127.48달러까지 상승, 다시 하락해 12월 4주에 배럴당 97.97달러가 됐다.

정유사는 통상 해외에서 수입한 석윳값에 유통 비용 및 정제 마진을 붙여 개별 주유소에 공급한다. 주유소를 통해 시중에 판매되는 기름값은 약 2주 전에 국제 가격으로 수입돼 정유사에서 정제 과정을 거쳐 공급되기 때문에 수입 시점으로부터 보통 2주의 시차를 거쳐 결정된다. 사실상 '원가'인 국제 유가를 판매 가격에 온전히 반영하지 않은 채 판매한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유사들의 이익(마진)은 전년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감시단에 따르면 지난해 정유사 마진은 휘발유의 경우 L당 42.09원으로 전년(2022년) 대비 L당 15.11원 감소했다. 가장 마진이 컸던 시기는 지난해 10월로 L당 69.61원이었다. 지난해 경유 마진은 L당 60.62원으로 전년 대비 25.8원 줄었다.

감시단은 정유사들이 이처럼 낮은 가격에 기름값을 책정한 요인을 두고 지난해 정부에서 펼쳤던 석유가격 점검 대책이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지난해 가스 요금과 전기 요금이 오르면서 정부가 물가 인상 요인을 철저히 점검했다"며 "정유업계에 석유가격 안정 협조를 당부한 정책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유업계는 최근 경기 부진과 고환율로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가격 경쟁이 심해진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전 세계적 경기 불황과 내수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다 보니 가격 경쟁이 심해져 유가가 올라도 시장 가격에 채 반영하지 못했다"며 "기름값 1원을 두고도 경쟁할 만큼 치열해진 국내 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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