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치솟은 처마는 일본 전통 가옥의 특징이다. 일본 옛 수도 교토에 줄줄이 늘어선 지붕 라인을 보며 사람들은 해방감을 느꼈다. 땅으로 내려앉는 대신 하늘로 향하는 처마가 금기를 깨고 희망을 쏘아 올리는 듯한 분위기를 내서다. 이 흥미로운 지붕 양식은 일본 도심에선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의 엘리트 건축가들이 1950~1960년대 서구 모더니즘에 경도돼 네모난 회색 건물을 짓는 데만 집중한 것이 원인 중 하나다.
'사라진 일본'은 사라지는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이다. 책은 일본 문화가 지워지는 이유를 서구 모델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세계관과 폐쇄성에서 찾는다. 일본은 1980~1990년대 '패션의 왕국'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이세이 미야케 등이 속한 일본 패션디자이너협회는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 신인들도 회원으로 받지 않으면서 고립을 자처했다. 교토의 한 식당은 소개 없이 처음 온 손님을 받지 않는다. 연줄이 없는 외국인이 예약 전화를 하면 "꿈도 꾸지 말라"고 퇴짜를 놓는다.
이런 일본을 미국 저자 알렉스 커는 위태롭게 바라본다. 미국 예일대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국학 석사 과정을 밟은 저자는 일본에서 40년 넘게 살며 일본 문화를 체험하고 연구했다. 서양, 중국과 비교하며 쓴 일본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가 풍성하면서도 날카롭게 읽힌다.
평화롭고 안전한 일본에서 '영원한 타자'로 대우받는 저자는 에도 시대 천민 계급 후손인 부라쿠민과 조선족 차별의 그늘을 일본 사회 곳곳에서 발견한다. "일본은 안으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애정 어린 호소를 하지만, 일본인들이 귀담아들을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