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문이 열릴 때마다 겨울 냄새가 성큼 들어온다. 장작이 타는 듯한 조금은 깔깔하고 서늘하게 쨍한 냄새.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들어오는 이의 외투에도 찬 바람 냄새가 잔뜩 묻어 있다. 아무 일 없어도 마음이 얼어붙는 듯한 겨울의 한복판. 개찰구로 향하는 계단에 한 여자가 양손 가득 짐을 들었다.
뻐근한 등을 받쳐주던 인형쿠션과 부장님 시선을 막아주던 화면보호기, 내내 모니터만 보느라 건조한 눈을 달래주던 인공눈물. 누가 봐도 직장을 그만두며 들고 나온 짐 뭉치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퇴사하는 이들이 들던 깔끔한 서류뭉치에 화분 하나 올린 상자는 얼마나 비현실적인 설정이었는지. 현실은 재활용 쇼핑백에 꾸깃꾸깃 쑤셔 담은 이런저런 사무실의 잡동사니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던 직장생활의 온갖 구질구질한 일상들이 그 안에 들었다.
간신히 끼워 넣은 쇼핑백 위로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는 양치컵 안의 칫솔. 움직일 때마다 떨어질 듯 말 듯 칫솔의 운명도 위태로웠다. 어쩌지, 잡아줘야 하나? 괜히 건드리면 기분이 안 좋으려나? 몇 번을 망설이며 뒤를 따르다 보니 기우뚱, 기우뚱, 세월과 중력에 맞서며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볼로냐의 사탑이 떠올라버렸다. 이탈리아에서는 '피사의 사탑'만큼 유명한, 아니 어쩌면 "기울어진 채로 안 쓰러지고 여태 남은 가장 높은 중세 탑"이라 더 유명한 볼로냐의 '두 개의 탑'이다.
높아서 아찔하고 기울어진 만큼 아슬아슬, 사진에 한 번에 담으려면 몸을 잔뜩 기울여야 하는 탑이 나란히 2개. 둘 중 더 높은 아시넬리 탑은 97m짜리 탑을 빙빙 도는 계단으로 오를 수 있었는데, 어두컴컴한 탑 안을 잠시 쉴 곳도 없이 오르는 일은 무릎이 후들거릴 만큼 아찔했다. 숨이 턱 끝에 차고서야 다다른 꼭대기는 아래에서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하늘과 닿아 있었다. 고층건물 전망에 이미 익숙한 현대인의 눈에도 이럴진대, 1119년의 사람들이 느꼈을 경외감이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어느 시대 누가 봐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탑인지라, 기울어진 탑의 모습은 여러 책에도 등장했다. 단테가 '신곡'에서 거인 안타이오스를 묘사하며 탑을 언급한 구절은 현판에도 자랑스레 새겨져 있고, 1788년 700일 동안 이탈리아 곳곳을 다니며 '이탈리아 기행'을 쓴 괴테 역시 "이런 미친 짓 같은 물건"이라며 놀라움을 남겨뒀다.
어떻게든 천 년을 버티던 볼로냐의 사탑이 요즘 붕괴 위험이란다. 비정상적인 흔들림이 감지된 가리센다 탑은 47m 높이로 둘 중에 짧은 탑이다. 위험경보에 아시넬리 탑에 오르는 것도 전면 금지. 탑이 무너져 내리며 피해를 줄까 봐 낙석을 받아낼 펜스도 설치되었다. 두 탑을 지켜내기 위해 공사비용 마련을 위한 기부도 한창 진행 중이다.
쓰러지지 마, 같이 버티자. 볼로냐의 오래된 탑에도, 전철역에서 만난 위태로운 표정의 그 여인에게도 전하고픈 말이었다. 막막해 보였던 여자가 다음 날이면 다시 출근할 곳이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 모두가 밥벌이를 하러 우르르 달려가는 시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쇼핑백에 구겨져 넣었던 노동의 일상들이 하나하나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추운 겨울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어주는 마음의 접착제들이, 볼로냐의 탑에도 그녀에게도 필요한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