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흉기로 일가족에게 상해를 입힌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해자의 유족을 상대로 피해자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1일 대구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권남국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대구 아파트 흉기난동 사건의 피해자들이 숨진 가해자의 유족을 상대로 제기한 2억 원대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대구 중구 한 아파트 25층에서 벌어졌다. 당시 A(66)씨는 흉기로 보험설계사인 B(71)씨의 얼굴 등을 수 차례 찔렀고 이를 말리던 B씨의 아들 C(39)씨에게도 휘둘러 치명상을 입힌 뒤 투신했다. B씨는 10시간에 거친 수술 후 발음이 새어나오는 등 후유증으로 지금도 병원에서 치료 중이고 C씨도 왼손으로는 물건을 움켜쥐지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
소송은 C씨가 지인인 권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권 변호사는 사건 경위를 파악한 뒤 바로 가해자인 A씨가 거주했던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A씨가 소유주로 되어 있고, 근저당도 설정돼 있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 아파트가 부동산매물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한 뒤 가압류 조치했다. 권 변호사는 "채무자인 가해자의 재산을 유족이 상속케 하는 등기인 '대위상속등기'로 처분을 봉쇄했다"며 "사건 경위와 재산 보전 필요성 등을 재판부에 소명한 결과 지난달 7일 4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묶어둘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신체감정 등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경중에 따라 배상금이 늘어날 수도 있다"라며 "병원비만 4,000만 원이 나왔고 사건 이후 피해자는 별도 숙소까지 마련한 만큼 배상금 확보에 매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죄피해자구조금제도도 절차가 복잡하고 그 금액도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실질적인 배상을 이끌어내는 등 유의미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 강력범죄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 그 가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흔치 않다. 가해자의 가족 등이 상속을 포기할 수도 있고 재산이 있더라도 명의를 이전하면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변호사 1명과 가해자 1명 등 총 7명이 숨진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참사 피해자들도 가해자의 유족에 대해 손해배상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한편 가해자 측도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대비하면서 법정다툼이 전개될 전망이다.